등려군 1953.1.29 – 1995.5.8
홍콩영화 전성기에 중화권의 여배우들이 가수를 겸하며 스타로 떠오르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왕조현, 종초홍, 엽천문, 양자경 등 1980년대 ‘책받침 스타’의 계보는 1990년대에 오면 임청하, 장만옥, 매염방, 왕정문(왕페이)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 중 왕페이는 가수로 더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이미 전성기가 지났으나 영화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전설의 가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등려군(덩리쥔, Teresa Teng)이다.
나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는 영화 ‘첨밀밀’을 계기로 전설의 이름을 만났다. 대만 출신인 그녀는 1970년대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으나 본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으며 동아시아를 주무대로 활약했던 가수다. 당시 중국 본토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녀의 노래를 금지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치였다. 사람들은 서슬 퍼런 공안의 압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낮에는 등소평이 지배하고, 밤에는 등려군이 지배한다’라는 말이 나온 까닭이기도 하다. 훗날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국의 시진핑도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그녀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53년생 동갑내기다.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은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영미권에서도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애창해왔다. 모차르트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이 말을 다시금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