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레이니 1927.8.20 – 1995.5.9
내가 지미 레이니(Jimmy Raney)를 알게 된 건 그의 아들 덕분이다. 1970년대 쳇 베이커 트리오 앨범에도 등장하는 아들 더그(Doug Raney) 역시 아버지와 같은 기타리스트였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정착해 활동하던 더그는 1980년, 뉴욕에서 온 아버지 레이니와 함께 ‘Duets’ 앨범을 낸다. 비슷한 톤의 기타 두 대가 주고받는 하모니가 정겹게 펼쳐지는 이들의 연주는 또 다른 부자지간인 쿠바의 베보와 추초 발데스 피아노 듀엣 앨범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지미 레이니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같은 시기에 데뷔한 기타리스트 짐 홀과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도 보다 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비밥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즉흥연주를 펼쳤다. 찰리 파커의 색소폰을 기타로 옮기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다. 더욱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기타 톤에서는 쿨 재즈의 경향마저 감지된다. 1950년대 초 스탄 게츠와 남긴 몇 장의 레코드에서 그러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Stan Getz Plays’ 앨범도 좋지만, 쿨의 서늘함과 비밥의 뜨거움이 한데 뒤섞인 ‘Storyville’ 라이브 앨범이 아무래도 한수 위다.
그는 1960년대에 잠시 슬럼프에 빠졌지만 이후 노년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많은 녹음을 남겼다. 특히 1980년대에 ‘크리스 크로스’ 레이블에서 발표한 앨범들은 여러 관점에서 재평가를 받아야할 만큼 사색적 깊이가 담긴 말년의 역작들이다. 지미는 함께 현역으로 활동했던 아들에게 끝까지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