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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May 12. 2023

장미 문신의 추억

페리 코모 1912.5.18 – 2001.5.12

  신입사원 시절 퇴근길에 자주 가던 뮤직 바가 있었다. 서울 신사동에 있던 가게였다. 하드 록 위주로 선곡된 음악이 주로 나왔으나 손님이 별로 없을 때는 조용한 스탠더드 팝도 간간이 틀어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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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페리 코모(Perry Como)의 <The Rose Tattoo>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술기운 탓이었는지, 7인치 레코드가 내는 소리가 유달리 좋았는지는 몰라도 그날 밤 나는 이 곡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나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장미 문신을 새긴다’는 신파극에나 나올 법한 가사도 왠지 그럴싸해 보였다. 그날따라 바리톤의 저음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가게 주인은 턴테이블에서 레코드를 내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페리 코모가 얼마전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딱히 놀랐던 건 아니지만 방금 들은 노래의 분위기와 감정이 뒤섞이며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그의 음반을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한번에 왕창 사거나 하진 않았고 오다가다 보이면 한두 장씩 집었다. 어느 음반을 골라도 다 괜찮았다. 근사한 그의 목소리 덕분일 것이다.


  <장미 문신>이 담긴 편집 음반까지 구했을 즈음엔 내 가게를 오픈한 후였다. 막상 가게에서는 이 곡을 많이 틀지 못했다. 이 곡은 ‘손님이 별로 없을 때’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들어야 더 운치 있다. 신사동에 있던 뮤직 바는 십 년쯤 지나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쳤던 모양이다. 이따금 예전의 그 장소가 아쉽다. 그날 밤의 페리 코모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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