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갈 France Gall 1947.10.9 – 2018.1.7
80년대 후반, 그녀를 현역 가수로 처음 만났다. 라디오에서 소개되었던 신곡 <Ella, Ella L’a>는 당시 한국에서도 유행하던 프렌치 팝이었다. 곡 제목의 ‘엘라’는 다름아닌 엘라 피츠제랄드다.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녀의 60년대를 기억한다. ‘꿈꾸는 샹송 인형’의 전설도 그때 시작되었다.
그녀의 음악 인생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첫 번째가 세르주 갱스부르다. 십대 시절 그를 만나며 아이돌 신화가 탄생한다. 그 신호탄이 된 곡,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의 원래 뜻은 ‘밀랍인형, 소리인형’이다. <Laisse Tomber les Filles>, <Les Sucettes>가 연이어 히트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나, 알고 보면 갱스부르의 성적인 장난기와 광기마저 서려 있는 곡들이다. 그녀는 한동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갱스부르를 ‘나쁜 어른’으로 일컫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인물이 바로 미셸 베르제(Michel Berger). 그와는 70년대에 만나 음악 동료이면서 인생의 반려자로 발전한다. 베르제와의 작업은 과거의 ‘인형’이 아닌 진정한 뮤지션의 시간이었다. 그들의 합작품 <Ce Soir je ne Dors Pas>는 70년대 프렌치 팝을 대표하는 곡이다.
프랑스 갈에겐 잠시 스쳐간 연인이 있었다. 클로드 프랑소와(Claude François)라는 이름은 혹시 낯설어도 그가 만든 곡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녀와의 이별을 담은 곡 <Comme D’habitude>는 얼마 후 미국으로 건너가 폴 앵카에 의해 <My Way>로 번안되어 프랭크 시나트라의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