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퍼트 Neil Peart 1952.9.12 – 2020.1.7
드러머가 밴드의 가사를 도맡아 쓰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가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 짓는 경우라면 그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일 것이다. 러시(Rush)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서 오랜 세월 팬들에게 인정받았던 까닭은 멤버들의 연주력도 출중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전하는 범상치 않은 메시지에 있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우주선의 이야기, 인간의 좌뇌와 우뇌의 싸움 등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은 모두 독서광 닐 퍼트의 머리에서 나왔다.
1976년에 발표된 ‘2112’ 앨범은 그러한 맥락에서 절정을 이뤘고 이때부터 러시는 중흥기를 맞는다. 러시의 음반들은 국내 라이선스 LP로도 상당수 발매되었다. 나는 1985년작 <The Big Money>의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3D 모션 그래픽은 컴퓨터 게임을 연상케 하며 시류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 무렵 러시는 신시사이저를 적극 활용한 뉴 웨이브 성향의 음악을 추구했다. 그러한 변화는 1981년의 ‘Signals’ 앨범부터 두드러졌는데 나는 이때의 러시를 좋아한다. 90년대에는 복고풍을 타고 다시 기타 위주의 록 밴드로 돌아갔다.
그들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드럼세트의 규모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닐 퍼트의 드럼은 그 압도적인 스케일과 섬세함이 조화를 이뤄냈다. 그것은 삼인조 밴드 러시가 보여준 탄탄한 연주력의 근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