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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Jan 12. 2023

성공신화에 드리운 그림자

로니 스펙터 1943.8.10 – 2022.1.12

  1960년대 미국은 걸 그룹의 전성기였다. 모타운의 도시 디트로이트엔 슈프림스(The Supremes)와 마블레츠(The Marvelettes)가 있었고 뉴욕을 기반으로 활약했던 시폰스(The Chiffons)와 셔를스(The Shirelles)도 저마다의 히트곡들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로네츠(The Ronetts)도 그중 하나다.


Micahel Ochs Archive (Getty Images)

  그들은 <Be My Baby>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 곡은 80년대에 영화 ‘더티 댄싱’의 오프닝에 실리며 팝 음악의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 스크린을 타고 흐르던 아련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로니 스펙터다. 이제와 다시 경청하면 어떻게 저런 보컬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 목소리는 절박하다 못해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이며, 애초부터 예쁜 척하며 노래 부르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에 대한 답가로 <Don’t Worry Baby>를 만들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로네츠는 이후 몇 개의 히트곡을 더 냈지만 로니의 결혼을 계기로 그룹은 와해된다. 본래 이름인 베네트에서 스펙터로 바뀐 건 남편이 바로 필 스펙터(Phil Spector)였기 때문이다.


  필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과도한 집착 때문에 엽기적이라 할 정도로 괴상망측했다. 그는 일명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로 녹음방식의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나 사생활은 문제가 많은 자였다. 로니를 위대한 가수로 만들기도 했지만 평생 그녀의 발목을 잡은 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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