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스펙터 1943.8.10 – 2022.1.12
1960년대 미국은 걸 그룹의 전성기였다. 모타운의 도시 디트로이트엔 슈프림스(The Supremes)와 마블레츠(The Marvelettes)가 있었고 뉴욕을 기반으로 활약했던 시폰스(The Chiffons)와 셔를스(The Shirelles)도 저마다의 히트곡들을 쏟아내던 시기였다. 로네츠(The Ronetts)도 그중 하나다.
그들은 <Be My Baby>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 곡은 80년대에 영화 ‘더티 댄싱’의 오프닝에 실리며 팝 음악의 영원한 고전이 되었다. 스크린을 타고 흐르던 아련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로니 스펙터다. 이제와 다시 경청하면 어떻게 저런 보컬이 나올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그 목소리는 절박하다 못해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이며, 애초부터 예쁜 척하며 노래 부르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이 이 곡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에 대한 답가로 <Don’t Worry Baby>를 만들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로네츠는 이후 몇 개의 히트곡을 더 냈지만 로니의 결혼을 계기로 그룹은 와해된다. 본래 이름인 베네트에서 스펙터로 바뀐 건 남편이 바로 필 스펙터(Phil Spector)였기 때문이다.
필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과도한 집착 때문에 엽기적이라 할 정도로 괴상망측했다. 그는 일명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로 녹음방식의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나 사생활은 문제가 많은 자였다. 로니를 위대한 가수로 만들기도 했지만 평생 그녀의 발목을 잡은 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