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의 재탄생

제리 멀리건 1927.4.6 - 1996.1.20

by 황세헌

재즈 뮤지션으로서 뉴욕 입성은 예나 지금이나 큰 의미를 가진다. 반대로 그곳을 떠나는 자들은 저마다의 속사정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가 50년대 초에 어떤 사연으로 뉴욕을 떠났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재즈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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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감행한 LA로의 이주는 쿨 재즈가 서부에서 본격적으로 발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미 마일스 데이비스의 ‘쿨의 탄생(Birth of the Cool)’ 녹음에 참여해 쿨 재즈의 가능성을 예견했다. 이주 초기 그가 만난 인물은 오클라호마 출신의 청년, 쳇 베이커였다. 그들은 피아노가 빠진 편성으로 악단을 구성해 성공을 거둔다. 피아노가 주도하는 코드 보이싱의 제약에서 벗어난 바리톤 색소폰과 트럼펫의 합주는 이전의 ‘쿨의 탄생’ 못지않은 반응을 얻어냈다. 두 사람이 각기 연주하는 선율이 나란히 전개되며 주고받는 모습은 마치 한편의 ‘브로맨스’를 지켜보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런 방식에 스스로도 고무되었던 지, 그는 몇 년 후에 쳇 베이커와 다시 만나 ‘Reunion’ 앨범을 내고, 또 다른 트럼펫 주자 아트 파머(Art Farmer)와도 같은 방식으로 ‘What is There to Say?’ 앨범을 만들었다. 모두 그의 50년대를 대표하는 앨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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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앨범 ‘Night Lights’도 그러한 맥락에서 탄생했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정장에 땀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을 깔끔한 외모는 쿨 재즈의 이미지를 한층 고양시키는 데 일조했다. 마일스에 의해 일종의 실험으로 시작된 쿨 재즈가 서부로 이전하여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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