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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Jan 30. 2023

떠나간 동생을 기억하는 법

김창익 (산울림) 1957.5.17 - 2008.1.29

  ‘어린 아이처럼 그림 그리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피카소가 한 말이다. 때로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은 남들이 미처 생각지 않았던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산울림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왔다. 그들의 음악은 아이들의 모자와 가방을 몸에 걸치고 질주하는 웃자란 어른의 모습 같았다. 그건 단순한 반항을 넘어 세상을 뒤엎을 만큼의 에너지였다. 어떠한 기획도 그들을 이끈 선배 뮤지션도 없었다. 산울림은 한국 대중음악의 돌연변이었다.


김창익 (사진 맨 오른쪽)


  그들은 1977년에 데뷔했다. 그해 영국에서는 클래시(The Clash)와 모터헤드(Motörhead)가, 미국에서는 토킹 헤즈(Talking Heads)가 데뷔 앨범을 냈고 팝 음악계에는 디스코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산울림의 드러머이자 삼 형제 중 막내 김창익은 당시 열아홉의 나이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나 한 시절을 풍미했고 90년대 이후 끊임없이 재평가를 받아오며 한국 록의 전설이 되었다. 1997년에 나온 열세 번째 앨범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오랜만에 셋이 함께 뭉친 그들은 당시 번성하던 인디 록 밴드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줬으며 삼 형제의 감수성과 에너지가 녹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 앨범은 그들의 마지막 정규앨범이 되었다.


  김창익의 사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산울림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김창완 밴드의 <Forklift(지게차)>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평생 기억하고자 만든 노래라고 한다. 이 땅의 우리는 이미 산울림의 음악을 영원히 기억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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