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이 (사랑과 평화) 1948.8.3 - 2010.1.29
벙거지 모자에 콧수염을 기른 얼굴, 엉거주춤 불안정하게 무대에 서 있는 모습. TV에서 그를 본 첫인상이다. 보컬도 어딘가 낯설었다. 그는 <울고 싶어라>를 불렀다. 당시 나는 십대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동안 들었던 가요들과는 많이 달랐다. 곡을 듣는 내내 웃음 포인트가 곧 작열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반복해 들을 수록 어딘가 마음을 적시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소울’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1987년, 한국 록 음악의 전설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한동안 모습을 안 보이다 어떻게 무대에 섰는지 말해 주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 당시 한국은 온 국민이 앞만 보고 달리던 때였다. 그나마 90년대에 와서 한국 록 음악을 되돌아보고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밴드 활동을 해왔음에도 이렇다할 주목을 못 받다가 방송출연 몇 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솔로 가수로 전향한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중매체는 그의 캐릭터를 신속하고 야무지게 소비했다.
시간은 그렇게 덧없이 흐르고 90년대 초 그는 다시 모습을 감춘다.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었던 것 같다. 2000년대 와서 그는 강원도 춘천에 터를 잡고 로컬 밴드를 결성한다. 일명 ‘철가방 프로젝트’. 음악이 그를 다시 붙잡은 것이다. 음악으로 다시 돌아간 그의 말년이 평온했기를 바란다. 울고 싶은 일도 없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