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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Feb 01. 2023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

리치 제임스 1967.12.22 - 1995.2.1

  정확히는 사망이 아니라 실종이었다. 리치(Richey James)는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자취를 감췄다. 리듬 기타와 작사를 담당했던 그는 이전부터 이슈 메이커로 유명했으나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밴드는 지속됐지만 이전처럼 냉소적이고 어두운 정서는 더 이상 찾기 힘들어졌다. 물론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는 여전히 훌륭하다. 



  밴드는 웨일즈 출신의 네 명으로 결성됐다. 그들은 브릿팝 붐이 불기 전 1992년에 데뷔 앨범을 낸다. 이때는 미국의 그런지 록과 헤비메탈의 느낌이 강했고 멤버들의 전반적인 비주얼은 뉴욕 펑크나 글램 록에서 영향을 받은 듯했다. 리치의 도발적인 퍼포먼스는 시드 비셔스를 닮았고 과장된 메이크업과 의상은 당시 일본의 비주얼 록 밴드들을 연상케 했다. 데뷔 앨범 수록곡 <Motorcycle Emptiness>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염세적인 가사와 함께 비장함이 흐르는 기타 리프, 거기에 치받는 보컬은 바람을 가르듯 시원스럽다. 고뇌하는 젊음을 노래한 수많은 로큰롤 중에서 내게는 이 곡이 으뜸이다. 그는 3집 앨범까지 내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발적 실종자가 된다는 건 어쩌면 ‘서서히 진행하는 자살’과도 다름없다. 그의 실종은 ‘이유 없는 반항’식의 충동적인 기분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감정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심정은 심리학자들이 진단하는 실존적 ‘공허’였을 수도 있다. 그는 아예 주변의 세상을 통째로 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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