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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Feb 07. 2023

유리천장을 녹여버린 소녀

장덕 1961.4.21 – 1990.2.4

  세상의 편견을 실력으로 뛰어넘고 인생의 굴곡을 음악으로 승화시켰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장덕은 너무 일찍 세상과 이별했다. 그녀가 데뷔하던 때만해도 한국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귀했다. 심수봉이 그나마 주위에 있었고 가요계는 여성 작곡가라는 존재에 대해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후 노영심에서 김윤아, 현재의 아이유까지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계보가 이어졌지만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장덕은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그 유리벽을 뛰어넘었다. 그녀의 곡으로 진미령은 <소녀와 가로등>을 통해 가요제 입상을 했고 이은하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스스로를 직접 증명했다. 1987년 발표한 <님 떠난 후>가 크게 히트하고, 이듬해 <얘얘>가 나왔을 때는 이미 멀티 뮤지션이었다. 작사, 작곡에서 프로듀스, 연기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이때가 음악 인생의 정점이었다. 예전부터 그녀를 삶의 굴곡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은 다름아닌 그의 가족이었다. 그 중에서도 오빠 장현의 투병은 동생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남매는 일찍이 듀오 ‘현이와 덕이’로 데뷔했지만 활동의 중심은 장덕에게 옮겨갔다.


  어느 날, 그녀의 시간이 영원히 멈춘다. 작곡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 안된 때였다. <예정된 시간을 위해>는 유작이 되었다. 그녀가 90년대 이후로도 계속 활동했더라면 어땠을 지 상상해본다. 오늘날 K팝의 지형은 제법 달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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