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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Feb 07. 2023

수선화처럼 청초하게

블라섬 디어리 1924.4.28 – 2009.2.7 

  산행 중 온갖 수풀 사이에서 발견한 노란 야생화. 그녀에 대해 가졌던 첫인상이다. 아득한 재즈의 숲에서 정형화된 감상의 틀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자문할 즈음 그녀를 만났다. 어느 날 각별한 분에게 선물 받은 LP 레코드가 만남의 발단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블루지한 감성으로 목청을 한껏 울리는 창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솜털같이 가벼운 톤으로 귓전에 대고 속삭이듯 노래 부른다. 그 느낌은 원숙한 성인의 감성과 구별되는 소녀의 감수성에 가깝다. 이러한 스타일은 80년대부터 시작된 트위팝(Twee Pop)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다. 어쩌면 그녀는 그들의 먼 조상인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에 활약한 재즈 보컬, 밥 도로우(Bob Dorough)에게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실제로 두 사람은 50년대에 보컬 그룹 ‘블루 스타즈’를 결성했다. 이 그룹은 훗날 유명 아카펠라 그룹, 스윙글 싱어즈(Swingle Singers)로 발전한다.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뉴욕과 런던을 오가며 일생의 명작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 <’Deed I Do>, <I’m Hip>, <Sunday Afternoon> 등의 곡들은 일요일 저녁 가게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녀의 노래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 속에서 더욱 빛났다.  70년대에는 ‘수선화(Daffodil)’라는 이름의 레코드사를 차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의 앨범을 냈다. 음반 커버의 주인공은 어느덧 단발머리의 귀여운 할머니로 변했지만, 레코드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해맑은 소녀의 음성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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