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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Feb 13. 2023

가장 빛나는 순간

휘트니 휴스턴 1963.8.9 – 2012.2.11

  추억의 팝 스타를 보내며 노래 한 곡 정도 들어보자는 덤덤한 마음이었다. 휴대폰으로 동영상 클립을 무심히 검색하던 중 ‘1994년 칠레 라이브’에서 시선이 멈췄다. 휘트니는 거기서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 <I Will Always Love You>를 불렀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사망소식 직후의 감정 탓인지 이제까지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David Corio / Redferns via Getty Images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시기 답게 노래는 흠잡을 데 없었고 무대 매너도 완벽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이미 오래전, 전성기에 훨씬 못 미치는 가창력을 목격했던 탓이다. 너무 높은 곳까지 올랐던 만큼 내리막에서의 상실감은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라이브 영상 속에서 갓 서른을 넘긴 그녀의 표정은 목소리만큼 자신감에 차 보였다. 그 자신감은 곧이어 폭발적인 감정연기로 이어진다. 마치 세상을 떠나기 전 부르는 마지막 노래 같았다. 실제 공연에서도 마지막 곡이었다고 한다. 무대는 캄캄하게 어두웠고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몸을 감싸고 있는 재킷만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건 사실 휘트니 그 자신이었을 것이다. 새삼스레 저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나 싶었다.


  라이브 현장에 머물던 그 찬란한 빛이 아득한 시공간을 지나 나의 휴대폰 블랙 미러에 도달하고 얼마 후, 액정 너머로 비치는 나의 눈동자에서는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진심으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스타의 죽음을 맞이하며 그들의 가장 빛났던 순간을 지켜보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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