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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Feb 13. 2023

재즈 보컬의 휴머노이드

알 자로 1940.3.12 - 2017.2.12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는 많아도 목소리를 악기처럼 다루며 그것을 연주력으로 발전시킨 가수는 세상에 몇 안된다. 적어도 70년대까지 알 자로(Al Jarreau)는 그 방면에서 독보적이었다. 이후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이 등장해 팝에서 클래식의 영역까지 보이스 퍼포먼스를 확장하나 그 또한 한동안은 알 자로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21세기에 듀엣 공연을 펼친 바 있다.



  흔히들 최고의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인간의 목소리가 기성 악기처럼 정교한 음정과 극한의 음역을 구사할 때 느끼는 감정은 다소 복잡미묘하다. 신기에 가까운 기예에 경탄하며 찬사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이지 않은 기계적인 모습에 불편함을 넘어 때로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는 지나치게 인간을 닮은 로봇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고 느끼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다. 알 자로의 전성기 때 퍼포먼스는 그러한 감정까지는 아니어도 어딘가 살벌한 기운을 동반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가운데 풍부한 감정연기마저 탁월했다.


  문득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기계 혹은 다른 생명체와 합체하여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갖게 된다. ‘플라이’, ‘비디오 드롬’의 영화 속 인물들은 각각 파리,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신체변형을 겪었다. 결과는 희비극이었다. 만약 인간과 악기가 결합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비주얼의 그로테스크함을 떠나 그 피조물은 아마도 알 자로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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