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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Feb 15. 2023

기억의 왜곡이 빚어낸 초현실

냇 킹 콜 1919.3.17 - 1965.2.15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노래는 추억을 부르는 힘이 있다. 처음 듣는 곡이라도 마치 어느 한 시절을 함께한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대단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노래에 빠져 들다 보면 실제 살아보지도 않았던 1950년대 미국의 풍경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마치 시공간이 휘어져 나를 어딘가로 밀어 넣는 느낌이다. 가히 초현실적이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에서 팝 가수로 전향함으로써 당대의 유행가들을 팝의 고전으로 격상시켰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


By David Cohea, ReMIND Magazine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냇 킹 콜의 노래에서 제목을 빌어왔다. 소설 속에서도 <South of the Border>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하지메에게 ‘국경의 남쪽’은 어딘가 있을 막연한 꿈과 희망이 서린 이상향의 장소다. 하루키에게도 냇 킹 콜에 대한 추억이 꽤 각별했던 모양이다. 그는 전작 ‘양을 쫓는 모험’에서도 <South of the Border>를 등장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냇 킹 콜은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적어도 이 곡이 담긴 그의 레코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곡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훗날 하루키는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고백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다.


  여기에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유튜브로 검색하면 정말로 냇 킹 콜의 <국경의 남쪽>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하루키의 한 열혈 팬이 냇 킹 콜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부른 녹음이다. 그럴듯한 비현실은 때로 초현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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