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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Mar 06. 2023

포스트 바흐

자크 루시에 1934.10.26 – 2019.3.5

  새 천년이 시작되고 래퍼 에미넴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의외의 인물이 그에게 저작권 소송을 걸었다. 바로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였다. <Kill You>가 자신의 곡 <Pulsion>을 허락없이 표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곡은 1979년에 발표된 재즈 퓨전이다. 바흐 스페셜리스트인 줄로만 알았던 그의 과거 이력이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난 해프닝이었다. 해프닝 치고는 워낙 거액의 돈이 걸린 문제였지만.


Keystone-France/Gamma-Keystone, via Getty Images


  그는 1959년 데카 레이블에서 시작해 만년의 텔락 레이블에 이르기까지 삶 전체를 통틀어 바흐에 천착한 재즈 피아니스트다. 중간에 드뷔시 등 다른 작곡가도 간혹 다뤘으나 그의 음악 인생은 바흐와 동일체나 다름없었다. 20세기의 재즈 트리오로 해석된 바흐의 음악은 그 정체성 마저도 새롭게 바라볼 만한 시각을 제공했다. 그것은 단순히 바흐의 멜로디를 반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바흐의 음악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재즈의 즉흥성과 진지한 화학적 결합을 도모했다. 그처럼 바흐에 접근했던 재즈 뮤지션은 2001년에 세상을 떠난 존 루이스(John Lewis)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크 루시에 덕분에 진정한 포스트 바흐를 만날 수 있었다. ‘포스트’는 ‘넥스트’나 ‘애프터’ 같은 단순한 시제의 차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대상과 맥락을 이루며 이어진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면서 극복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 펑크 같은 말들이 그렇다. 언젠가는 ‘포스트 루시에’를 만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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