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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세헌 Mar 09. 2023

왕관을 쓴 거리의 시인

노토리어스 비기 1972.5.21 – 1997.3.9 

  한 장의 사진은 전설이 되기도 한다. 붉은색 배경, 삐딱하게 쓴 왕관, 정면을 응시하는 불안한 눈빛의 카리스마가 담긴 포스터는 오늘날 비기(Notorious B.I.G)를 상징하는 비주얼이 되었다. 얼마전 소더비 경매에서 사진 속의 왕관은 6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그 플라스틱 소품은 촬영을 위해 단돈 6달러에 구입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왕관만 남았으나 우리는 여전히 그를 ‘뉴욕의 왕’으로 기억한다.



  힙합이 동부와 서부로 나뉘어 경쟁하던 90년대 중반 그는 동부 힙합의 아이콘이었다. 서부 LA에는 닥터 드레, 스눕 독(Snoop Dogg), 투팍이 일찌감치 90년대를 열며 전국구 스타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는 데뷔작 ‘Ready to Die’를 내놓자마자 단숨에 정상에 오른다. 퍼프 대디(Puff Daddy)와 이지 모 비(Easy Mo Bee)의 프로듀스가 각각 반영된 이 앨범은 직설적으로 내닫는 과격함과 달콤한 R&B 샘플링 위에서의 우아함이 공존한다. 거기에 자신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스토리텔링이 앨범의 설득력을 더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우탱 클랜(Wu-Tang Clan)과 함께 뉴욕 힙합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매우 짧았다. 한때 친한 동료이던 투팍과의 오해가 동부와 서부 간의 대결로 번지며 두 사람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왕이 사라진 후 양쪽 진영 간의 ‘디스’전도 어느덧 흐지부지되었다. 대신 뉴욕에서는 또 다른 각축전이 펼쳐진다. 왕의 자리는 자신이 이어가야 한다며 두 래퍼가 서로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나스(Nas)와 제이 지(Jay Z)였다. 그러는 동안 이미 힙합은 주류 문화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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