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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의 단두대 매치

그는 형장의 이슬이 되었을까?

by 레잇 블루머


어느 날부터인가 이불을 덮을 때마다

목에 닿는 이불의 감촉이 칼날처럼 느껴졌다.


"이거 뭐야? 혹시... 단두대?"


처형장, 사형수, 단두대.


이불 하나 덮었을 뿐인데

내 상상은 18세기 프랑스로 날아갔다.


계속되는 불면의 밤들.

나는 단두대에 누운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며

칼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칼날이 언제 떨어질까?

떨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떨어지기 전에 도망칠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며 수면제를 삼켰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칼날, 왜 아직도 안 떨어졌던 거지?”



나는 항상 "앞으로 3개월을 못 버틸 거야"라고 말했다.

심지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3개월이 데드라인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혹시 3개월 후에

내가 다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때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래서... 그 3개월은 결국 뭐였던 거야?"


3개월 후의 3개월 후에 있는 나는

여전히 3개월 후를 말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3개월 전에,

그 전의 3개월 전에,

또 그 전전 3개월 전에,


칼날이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3개월은 허상이었다.

단두대는 없었다.


나는 있지도 않은 단두대 위에

홀로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건 단두대가 아닌

나를 위해 준비된 내 인생 무대였다.



이불을 덮으면 따뜻해진다.

추위로부터 보호받는다.

가끔 목을 조이지만, 나를 해칠 생각은 없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나를 가두는 감옥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단순한 경고등이었을지도.


"야, 너 지금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감기 걸릴 수도 있어!"


어쩌면 딱 그 정도의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길도 누군가에겐 오르막이고,

누군가에겐 내리막이다.

그리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다.


더 나빠질 게 있겠는가?

아니, 좋은지 나쁜지 대체 어떻게 아는가?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를 평가할 수 없다.

그건 미래의 내가 할 일이다.



자 그러면...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나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단두대 연극을 할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이라는 이불을 침대 한쪽으로 접어두고,

커피나 한잔 하러 나갈 것인가?



선택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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