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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는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떨림에 대하여

by 레잇 블루머


살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가끔 집안의 어느 한 문이 이유 없이 덜덜 떨리는 현상.

우리 집에서는 안방 화장실 문이 그랬다.


"쟤... 왜 저러는 거야?"


이따금 이유 없이 떨려서 신경이 쓰였는데,

알고 보니 베란다에서 돌고 있는 세탁기 때문이었다.

탈수가 시작되면 콘크리트를 타고 진동이 전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하필 딱 그 문만 떨릴까?

집안의 다른 문들은 멀쩡한데,

어째서 그 문만 반응하는 걸까?

마치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 것처럼.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한때 같이 일했던 회사 후배가

너무나 재미없는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다.


"들깨 칼국수를 먹으면 술이 들깬다."


순간 사무실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그 순간,

딱 한 사람.

팀장님만은 빵 터져서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웃기다고...?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팀장님에게는 분명 무언가가 꽂혔던 것이다.


들깨.png



노래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이 노래 너무 좋다"며 들려달라고 했다.

거북이의 〈비행기〉.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곡이었다.

경쾌한 리듬, 쉬운 멜로디,

그래서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틀어줬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아이들은 신나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듣던 중,

내 눈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너, 따라가고 싶어 울었던

철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비행기 타고 가요."


그 순간, 가사 속에서

헤어짐의 아쉬움,

떠나는 이에 대한 부러움,

비행기라는 비싼 경험이

내 처지와 묘하게 겹쳐져

내 마음에 닿았던 것이다.


비행기.png



그제야 깨달았다.

진동은 전해지는 법이라는 걸.


세탁기의 떨림이 특정한 문에서만 느껴졌듯이,

어떤 농담이 어떤 사람에게만 터지는 것처럼,

한때 아무렇지 않던 노래 가사가,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을 울리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말을 듣고도 깊이 공감한다.

어떤 공간에서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어떤 곳에서는 이유 없이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떨림.


그렇다면,

우리는 이 떨림을 조절할 수 있을까?


사람이 기분 좋을 때와

우울할 때의 상태는 분명 다르다.


피곤하고 지친 날은

짜증 나는 일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작은 일에도 웃을 수 있다.


즉, 우리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과의 주파수가 맞춰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의외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만약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떨림을 가지는 게 좋을까?


짜증과 불평으로 가득한 사람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


이 둘의 삶이 같을 리 없다.

결국 우리는 어떤 감정을 지속적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떨림을 발산하고,

그 떨림이 결국 내 삶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어떤 떨림을 가질 것인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떨림을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우리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끌어오고 있다.


마치,

화장실 문이 세탁기의 진동에 반응했던 것처럼.


어쩌면 세상의 흐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한 원리일지도 모른다.


어떤 떨림을 가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내일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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