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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온라인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by 레잇 블루머

20여 년의 회사 생활.

마지막 직장에서는 11년을 근속하며 ‘에이스 차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했고, 상위 직급을 넘어서는 연봉도 받았다.

하지만 팀장과의 나이 차는 3살, 그가 그만두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연봉은 올랐지만 생활비는 늘 부족했고, 고심 끝에 온라인 사업가로 독립을 선언하며 퇴사했다.


온라인 사업은 생소했다.

그래서 초반부터 1200만 원이 넘는 초고가 컨설팅을 신청했다.

큰돈을 쓴 만큼 ‘이 컨설턴트가 나를 반드시 성공시켜 주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컨설팅은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떠 먹여주는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면 거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온라인 사업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나는 시도할 것조차 없었다.

결국 또 다른 교육을 찾았다.


마케팅 대행, 수익화 블로그, 위탁판매, 구매대행, 공동구매, 유튜브 제작, 멘털 훈련까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나를 배우고 조금 시도해 보다 결과가 안 나오면 또 다른 걸 배우는 식이었다.

당시에는 빠르게 성공하기 위해서 빠르게 갈아탄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어떤 사업이든 임계점을 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빠른 성공에 눈이 멀어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교육비로만 몇 천만 원을 더 썼다.

그리고 이 교육들에는 그 컨설턴트가 판매하는 교육들도 다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초고가 컨설팅을 받은 이들의 대다수가 나처럼 별다른 성과를 못 내고 돈만 날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컨설턴트는 내가 성과를 내지 못한 건 본인 탓이 아니라 모두 내 탓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성과를 내면 ‘본인’이 잘한 거고, 성과를 못 내면 ‘내’가 못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이것이 대다수 온라인 사업 컨설팅의 실체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평생 컨설팅을 해준다고 했지만 나는 그를 차단했다.

또 뜯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수입은 0원. 한 달 500만 원이 넘는 생활비와 사무실 운영비는 대출로 메웠다.

조급해졌다.

퇴직금은 진즉에 다 썼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받았다.

그때 과거 회사 동료가 자사몰 사업을 제안했다.

“백 퍼센트 확실하다”는 말에 혹했다.

모든 사업을 접고 자사몰 마케팅에 올인했다.

그는 물건을 사 오고, 나는 마케팅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였다.

1년 동안 3천만 원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지만, 수익 배분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1년이 지나서야 그가 나를 이용하고 착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에게서 벗어났을 땐 이미 빚더미였다.


앞으로 3개월 후 파산이 확실한 지금,

나는 쿠팡 이츠 배달 일을 시작했다.

나의 예정된 파산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초기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 위탁 판매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너무나 많은 실패,

배신의 아픔,

두 아이의 아빠로서 느끼는 경제적 압박,

그리고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알코올 중독까지...

정신과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사람들이 왜 자살을 선택하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하지만 난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저지른 일은 해결하고 죽어야 한다.

가족들은 그저 나를 믿었을 뿐이니까.


똑똑하고 일 잘한다고 자부하던 나는 사업의 세계에서는 무력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늘 손해 보는 쪽을 택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다.

이제야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한다.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써 내려가는 마지막 3개월의 이야기.

아무도 듣는 이 없고 보는 이 없어도 나는 내가 겪어 왔고, 앞으로 겪을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과, 경험과, 깨달음이, 세상 어딘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단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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