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오피스 블루스
아니,
퇴사자는 인 더 하우스 할 수가 없다.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자녀가 있는 아빠는.
한때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던
오락실에 갈 수도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오락실은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어디라도 나가야 한다.
도둑 고양이마냥 조심스레 준비를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신도시 지식산업센터에 있던
사무실을 정리한 뒤
집 근처 가장 싼 공유 오피스를 한 칸 얻었다.
한 달 27만 원.
창문조차 없는 0.5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
가루가 떨어지는 페인트 칠,
삐그덕 거리는 의자.
여기가 오늘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차비와 밥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집 근처로 정했지만
막상 끼니때마다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와서 먹으라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삶은 계란 두 개를 꺼낸다.
껍질을 벗길 때마다
책상 위로 파편들이 떨어진다.
앞방 분이 늦은 출근(?)을 한 모양이다.
얼굴은 못 봤지만,
타자 소리로 성격은 알 것 같다.
비트에 맞춰 내 마음도 두근 거린다.
좋은 키보드다.
뒷방은 여성 분이다.
오늘도 여러 차례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자주 한다.
그녀는 알까?
내가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만큼
통화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커피머신 앞에서 마주친 분과 3초 눈빛 교환.
'먼저 하시죠.'
'아닙니다, 먼저 하세요.'
'무슨 사연이세요?'
'뭐 그런 거죠'
'다 그런 거죠.'
...
...
눈빛 합의 완료.
오후가 되며 방의 공기가 답답해진다.
아까 분명 이쪽 라인의 난방 온도를 내리고 왔는데...
확인하러 가보니 다시 올라가 있다.
다시 작은 전쟁이 시작된다.
화장실 문은 왜 그렇게 잠겨 있는지
같은 공간에 있으면
생리 현상도 비슷해지는 것인가.
가끔은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공유 오피스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인 동시에 엑스트라다.
나도 누군가에겐 그저 배경 소음일 뿐이겠지.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린다.
쿠팡 이츠 광고 문자다.
오늘 저녁 (17:0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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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건 성공 시 20,000원!
노트북을 끈다.
이어폰을 꽂고 오피스를 나선다.
태사자와 한스밴드 사이에서 고민한다.
멜로디는 둘 다 신나는 곡인데...
고민 끝에,
한스밴드의 오락실을 누른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고
나는 오락실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 시대의 퇴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