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성수

8화 어머니 날

by 왕눈이 누님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집모퉁이에 동생들과 나란히 앉아 ‘어머니날’ 노래를 연습중이다.

남철이는 곧잘 분위기 잡고 부르는데 한수는 재미없다고 장난만 치고 두수는 가사도 못외우고 웅얼거려서 성수는 걱정이 많다.

동생들을 잘 가르치라고 다짐하고 나간 은수언니가 야속할 뿐이다.


“내일까지 다 외워. 알았지?”

건성건성 대답하는 한수와 눈만 껌벅거리는 두수가 웬지 미덥지 않다.


‘어머니 날’이 며칠 뒤로 다가온다.

얼마전부터 ‘어머니 날’ 준비해야 한다고 여러번 선생님께서 당부하셨다.


풍금소리에 맞추어 ‘어머니 날’ 노래를 부를 때면 2절도 시작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소리가 났다.

어머니, 엄마......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건 성수만 그런건 아니었나 보다.


“내일은 편지쓰기, 모레는 카네이션 꽃만들기를 해야 하니까 준비물 잘 챙겨오세요.”


어머니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되고 설레는 것이 소풍을 기다릴때와는 다른 설레임이다.


작년 이맘때도 ‘어머니 날’ 아침에 오남매는 엄마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이 달아드리고, 침 발라 쓴 편지도 드리고, 밥상앞에 일어서 어머니날 노래를 불렀다.


은수언니는 목이 메어 끝까지 부르지도 못했고 성수는 눈물을 꾹 참고 동생들 손을 꼭 잡고 3절까지 노래를 다 불렀다.


“빨리 학교 갈 준비 안하고 쓸데없이.”


엄마는 아버지 눈치를 보며 앞치마로 눈물을 훔치고 서둘러 부엌으로 도망가듯 나가셨다.

그리고 뒤란 장독대 뒤에 웅크리고 앉아 코를 핑 풀며 자식 잘 키운 보람있다고 웃다가 울다가 그러셨다.

온종일 카네이션꽃을 달고 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괜히 돌아다니셨고 꼬깃꼬깃한 편지는 함지에 넣어 두고선 한번씩 꺼내어 한참을 들여다보곤 하신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동있는 편지를 써보도록 하세요.”


'사랑하는 어머니께'


책받침 위에 올려놓은 하얀 편지지.


성수는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다.

아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작년에는 쉽게 쓴거 같은데 왜 한 살 더 먹었는데 쓰지 못하고 있는지 성수도 잘 모른다.

괜히 코끝만 찡하다.


엄마는 아내 아낄 줄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 오남매를 기르며 집 안팎 살림을 도맡아 하시면서도 늘 주눅든 삶을 사셨다.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동동거리며 엄마의 삶이 아닌 가족의 삶을 사시는 엄마가 안스러워 성수는 미리 철이 들어버렸다.


수돗가로 나온 성수는 눈물인지 콧물인지 하염없이 닦아낸다.

눈이 퉁퉁 부어오른 성수와 영자는 눈이 마주치자 서로 민망해 웃음을 터뜨린다.


'엄마, 우리 엄마.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


한글자 한글자 쓴 편지를 성수는 정성껏 책갈피에 꽂아두었다.


“카네이션꽃 만들 준비하세요.”


아까부터 성수는 은수언니 교실을 기웃거린다.

풀과 색종이를 얻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느 집 같으면 각자 학용품이 있겠지만 세 자매는 색종이와 풀 같은 학용품을 서로 번갈아 쓴다.

이렇게 동시에 같은 학용품을 사용할 때는 순서를 잘 정해서 써야 한다.


그래도 올해는 큰아버지가 색종이와 풀, 학용품을 선물로 사주셔서 여간 좋은게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색종이 대신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그려서 오려서 썼고, 풀은 밥풀로 대신했다.


다행이 흰쌀밥은 얇게 펴서 누르면 잘 펴지기도 하고 찰기도 있어서 잘 붙는데 보리밥은 눌러도 펴지지도 않고 알맹이가 돌아다니기 일쑤고 찰기도 없어서 침을 아무리 발라도 붙지도 않는다.


언니는 색종이를 아껴서 쓰고 자투리는 봉투에 잘 담아두었다.


빨강색 색종이를 뾰족하게 접어 끄트머리를 가위집을 넣어 잘랐다.

녹색 색종이로 이파리를 만들고 갈색으로 만든 꽃잎대에 풀로 붙이면 엄마에게 드릴 카네이션꽃이 완성된다.

손끝이 야문 성수는 꽃잎도 이파리도 제법 그럴싸하다.

마지막 풀칠만 잘해서 옷핀에 끼우면 완성이다.

뚜껑을 잘 닫아둔 풀을 꺼내 꽃잎에 잎사귀에 콩콩 찍어 바른다.

너무 세게 누르면 풀이 넘쳐흘러 지저분하고 너무 조금 바르면 잘 붙지 않는다.


마지막 풀칠까지 해서 잘 마르라고 흔들흔들하며 요리조리 살펴본다.

뽀얀 엄마 얼굴에 빨간 카네이션이 잘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엄마 가슴에 달아줄 걸 생각하니 오늘도 눈물이 핑 돈다.


순봉이는 아직도 카네이션 꽃과 시름하고 있다.


모양도 삐뚠데다가 밥풀로 붙이려고 하니 겉돌고 찰기가 없어 자꾸 떨어지니 딱하다.

성수는 풀을 아껴쓰라는 은수언니의 냉정한 말투를 뒤로 하고 눈 한번 딱 감고 순봉이의 카네이션에 풀을 발라주었다.

콩콩 두 번만 찍어서.


내일 아침이면 순봉이 엄마의 눈도 퉁퉁 부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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