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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공부보다 중요한 것
: 그릿(Grit)

좌절에 쉽게 무너지는 아이가 있다면..

by 김은예

한창 블럭 쌓기를 좋아하는 시기가 아이들에게 찾아 온다.

블럭을 높게 높게 쌓으면, 어른들의 박수와 웃음, "잘한다"라는 칭찬을 들으며

아이는 뿌듯해 한다.

그렇지만 블럭을 무한정 높게 쌓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쓰러지는 순간이 찾아 온다.

한개만 더, 한개만 더 하다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럴 때 블럭과 함께 마음이 무너지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의 첫째는 쓰러짐을 견디지 못했다.

칭얼거리며 울다가 급기야는 블럭을 내던지기까지 하였다.

"괜찮다"는 말도 "다시 하면 돼"라는 말도 첫째 아이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지 못하였다.


다시 같은 상황, 둘째는 조금 다른 반응이었다.

무너지면 안타까워하고 실망은 하였으나, 곧 다시 블럭 쌓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이 실망해 주는 사람이 옆에 없어도, 높이 쌓았을 때 박수쳐주고 웃어주며 '잘했다'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몇번이고 무너진 블럭을 다시 쌓았다.

첫째처럼 울면 어쩌나 블럭을 던지며 짜증내면 어쩌나 조마조마 하던 나의 마음도 점차 나아졌다.


내가 첫째와 둘째에게 대하는 태도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이 차이는 둘의 기질의 다름에서 오는 것이 가장 클 것이다.


애초에 첫째는 예민한 기질에 좌절에 다소 취약하고, 둘째는 덜 민감하여 좌절을 가볍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좌절에 더 취약한 기질을 가진 아이도 노력과 환경을 통해 그 좌절을 견디고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Duckworth와 동료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한 지속적 헌신을 통해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인 그릿(Grit)이란 개념을 학계에 발표하였다.

그릿이란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열정과 인내'를 의미한다.

그릿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인 것이다.





내 아이를 좌절에 잘 견디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유아동 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그릿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 노력 중심 피드백

– “열심히 했구나”, “다시 도전한 게 멋져”와 같은 과정 중심 칭찬은 아이의 지속 의지를 북돋운다.

– 반면 “넌 똑똑하구나” 같은 능력 중심 칭찬은 실패 회피 성향을 강화할 수 있다.

2. 작은 성공의 반복

– 약간의 도전이 필요한 과제(ZPD 영역)를 통해 성취감을 맛보게 하면 도전 동기가 자라난다.

3. 모델링

– 부모가 실패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4. 실패의 정상화

– “실패는 흔한 일이야”, “실수도 배움의 일부야”라는 말은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5. 선택권 제공

– "이걸 다시 해볼래, 아니면 다른 걸 해볼래?"와 같은 선택의 기회는 아이의 자기주도성과 지속 의지를 강화한다.

이러한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아이는 ‘그냥’, ‘담담하게’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그릿은 말하자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는 마음의 내성訓練인 것이다.





블럭 쌓기에서 쉽게 좌절을 느끼던 2살의 아이가 이제 7살이 되었다.

여전히 자신이 생각한만큼 한번에 쉽게 잘 되지 않을때 첫째 아이는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거나

어떤 때는 중도에 포기하기까지 한다.

어디서 배워왔는지 "엄마,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야."를 평소에는 잘만 말하더니

잘 안 풀리는 상황 앞에서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인 포기를 그렇게 잘 해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들이 있다.

가령 짜증내는 시간이 짧아졌다던지,

하지 않겠다고 하던 것들을 어느새 돌아보면 구석에서 혼자 하고 있다던지.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준비하며 스트레칭을 하는 동영상에서 프로그램 담당 PD가 물었었다.

"(스트레칭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세요?"

그 질문에 당황해 하던 김연아의 표정이 생각난다.

김연아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1초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말하며 소리내어 웃는다.


10대의 어린 미래의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에게

연습이 잘 되든 되지 않든,

날씨가 좋든 좋지 않든,

피겨를 하고 싶은 날이든 하기 싫은 날이든

그 모든 것은 그녀가 피겨를 하는 또는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와 핑계가 되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담담히" 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의 키가 커지는 만큼 어떤 상황에도 '그냥' '담담하게' 꾸준히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마음의 근육인 그릿도 함께 자라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인내하고 오랫동안 지켜봐줄 수 있는 부모인 나의 그릿도 함께 성장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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