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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7살에게도 이유는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꽤 과학적이다.

by 김은예

아빠의 섬세한 기질을 닮은 첫째 아들이 너무 온순해서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 말이라면 하기 싫어도 하고, 친구가 원하면 자기가 하던 것도 조용히 내어주는 아이.

착하다는 말에 늘 둘러싸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 ‘착함’이 걱정이었다.

스스로의 감정보다 ‘좋은 아이’로 보이려는 마음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7살이 되면서 갑자기 달라졌다.

어느 날 “목욕하자”라는 말에 처음으로 “싫어”라고 대답했다.

습관처럼 하던 일인데, 고개를 돌리며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처음엔 ‘무슨 일이지?’ 싶었고, 곧 ‘왜 자꾸 말대답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젠 뭐든 “싫어”다. 이유도 되지 않는 이유를 붙인다.

논리도 안 맞는 말들을 하며, 말끝마다 반항의 기색이 묻어난다.

그 모습을 보며 남편은 아이와 말싸움을 벌인다. “그건 말도 안 되잖아!”,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데?”. 아이는 울컥하고, 남편은 더 단호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사실 7살은 조용한 ‘미니 사춘기’. 아이의 뇌와 몸은 지금, 전쟁 중이다

몸속에서는 부신피질 호르몬이 서서히 증가하며 감정 기복이 커지고, 충동 조절은 어려워진다. 특히 남자아이의 경우, 안드로겐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 예민해지고, 독립적인 척 하다가도 여전히 미숙하고, “싫어!”라는 말로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7살의 인지 발달을 살펴보면, 이들의 세상은 아직 흑백뿐이다

장 피아제(Jean Piaget)에 따르면, 7살 전후의 아이는 ‘구체적 조작기’(Concrete Operational Stage)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아이는 사고 능력이 크게 발달하여 보존 개념, 분류, 서열화, 탈중심화 같은 논리를 익혀가지만, 아직 사고의 기반은 구체적인 경험과 현실 세계에 머무른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자기중심성(egocentrism)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입장이 곧 모두의 입장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잔존한다. 그래서 타인의 시각이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내가 이렇게 느끼니까 엄마도 그래야 해’, ‘내가 억울하니까 그건 무조건 불공평한 거야’라고 여긴다.

그래서 세상을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흑백 논리로 구분하며, 복잡한 상황 속 맥락이나 모순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 동생은 되고 나는 안 돼?”, “엄마는 맨날 자기 말만 해.” 이 말들 속에는 억지가 아니라, 자기 세계의 기준으로 질서를 만들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아이의 머리는 지금, 세상을 해석하고 조직하려 애쓰는 중이다.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따르면,

이 시기의 아이는 전인습 수준(pre-conventional level), 특히 1단계(처벌 회피) 또는 2단계(개인 욕구 충족)에 머물러 있다. 즉, 아이에게 옳고 그름은 내면의 양심이 아니라 벌을 받을까, 보상을 받을까, 또는 엄마가 좋아할까 싫어할까의 문제다.

지금 우리 아이는 그 중간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이런 도덕 판단 방식은 매우 구체적이며 외재적이다. 그래서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소용이 없고, 눈빛 하나, 표정 하나가 더 설득력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건 옳지 않아”보다는 “엄마가 좀 서운하네”, “그렇게 하면 친구가 속상할 수 있어” 이런 말이 더 와닿는다.

아이는 지금 도덕적인 원칙보다 ‘엄마와의 관계’, ‘내가 사랑받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밀 때, 그 안엔 “나 혼나고 싶지 않아”, “나,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어” 그런 작은 마음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들어줘야 할 건 말의 논리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그 마음이다.


나는 이제 안다. 아이의 말대답은 무작정 반항이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를 세우는 중이라는 걸. 그 ‘싫어’ 속엔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아이의 용기가 담겨 있다.


처음으로 ‘좋은 아이’가 아닌, ‘나’로 살아보고 싶은 선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젠 말싸움을 멈추기로 했다. 이 시기를 지나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논리나 훈육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수용해주는 어른의 품이기 때문이다.


“미운 7살”이라는 말 속엔 사실, “힘겹게 자라고 있는 7살”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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