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군입대 후기
80년대 중반생이라 mz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mz의 m 끝언저리 어디쯤에 위치한 애매한 40대 초반 민간인이 운이 좋게 군부대(사관학교라고 부르고 군부대라 일컬어지는)에 입성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군대인지도 모르고 발을 들였다. 교육학 박사 학위 후, 내가 있을 곳이 없나 대학들을 두리번거리다가 내가 사는 지역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관학교에 교육학 교수 자리가 났길래 덜컥 지원하였고, 대학교인 줄만 알았던 군부대에 운이 좋게도(?) 얼렁뚱땅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임용 후 첫날, 학교장님께 ‘신고’가 나의 첫 일정이었다. 내가 해본 ‘신고’는 거의 10년 전 남편과 주민센터에 가서 했던 혼인‘신고’가 전부인데, 학교에 처음 가는 날 ‘신고’를 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였다. 알고 보니 학교장님께 ‘인사’를 하는 자리였다. 40년을 민간인으로 살았던 이제 막 사관학교 교수는 ‘신고’라는 말조차도 너무 낯설었다. 곧 당직을 서야 해서 학교 곳곳을 둘러보는데, 안내를 해주시는 주무관님이 40년간 운동장인줄 알았던 곳이 ‘연병장’이란다. ‘연병장’이라니.. 중국 연변이 생각나기도 하고, 괜히 북한말 같기도 하고 어리둥절. 이 외에도 학교장님 ‘결심’이라던가 ‘간부’라던가, ‘다, 나, 까’로 끝나는 말, 무슨 말이든 줄여서 말하는 어떤 관습 같은 것 등도 어색하기만 하였었다. 민간인이 알아야 할 군대 용어, 군대 언어 예절이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처럼 헐렁하고 맞지 않아 낯설기만 하였다.
그래도 생명력이 긴 나는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매일 16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 있는 체력단련 시간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일단 체력단련실을 가보았다. 몇몇은 연병장 및 부대 안을 달리기도 하였고, 몇몇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기도 했다. 나는 주 2~3회는 체력단련실로 향하였다. 8시 30분 출근과 17시 30분 퇴근을 1분이라도 늦지 않게 컴퓨터에 출퇴근 버튼을 열심히 눌렀다. 점심시간에는 학교 근처 맛집을 즐겨 찾던 내가 같은 센터 주무관님들과 ‘간부 식당’에 가서 열심히 점심을 먹었다. 어디서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던 함께 공부하던 이제는 전역한 전직 소령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이곳의 규칙들을 잘 지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1주일쯤 지나고 간부 식당에서 만난 주임 원사님이 “적응을 잘하네. 원래 부대원인줄 알겠어요.”라며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를 말을 투척하고 지나가셨는데, 왠지 뿌듯하였다.
내가 가장 군대에 왔구나를 실감한 경험은 바로 ‘당직’이었다. 첫 당직 날,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컴컴한 당직실을 밤을 새워 지키는데 처음에는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었다. 이 큰 건물을 내가 밤을 새워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무겁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생도까지 모두 잠든 밤, 틈틈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핸드폰으로 무의미한 영상들을 보며 끝끝내 가지 않던 시간들 속에서 문득 내가 그동안 두 발 쭉 펴고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24시간 조금의 공백도 허락하지 않고 나라를 지킨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따뜻한 당직실 안에서 밤을 새우지만, 전방의 군인들은 추운 날이나 더운 날에도 밖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알지도 못하는 이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 시간 나와 같은 시간에 깨어서 나라를 지키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묘한 동질감을 주었다.
11월에 임용되고, 몇 개월 후 4학년 생도들의 임관식을 지켜보았다. 건물 안에서 연병장에서 진행되는 임관식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마주친 적도 없는 이들이건만 이제 막 소위로 임관하는 생도들에게 축사하는 학교장님의 말씀 중 “(장군의) 별보다 빛나는 (소위의) 다이아몬드” 구절에서는 왠지 모르게 정말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오열하고 말았다. 그들의 4년간의 생도생활을 지켜보진 못했지만 막연하게 파노라마처럼 4년 간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 순간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할까, 함께한 가족들 역시 그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대견하면서도 가족들도 함께 걱정을 안고 살아갈 텐데 등등의 복합적인 생각들이 눈물로 쏟아졌다.
이 이야기를 같은 교양학처 처장님께 말씀드리니 “교수님 둘째(4살, 딸)도 크면 국간사 보내세요.”라고 하는데 이때에는 또 선뜻 “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무나 그 길을 갈 수 없음을 알기에, 이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누가 시켜서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알기에..
임용되고 3개월이 지났을 때인가.. 16시 30분 체력단련 시간이 되어 어김없이 군부대를 뛰고 있는데, 중령님이신 연구소장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군 이야기를 하며 나의 적응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군며들으셨군요.” 하신다. 그렇다. 나는 군대에(?) 입대한 지 6개월, 나름 ‘국간사 6개월 차’로 살아남았고, 군며들고 말았다. 여전히 ‘연병장’이, ‘간부 식당’이. ‘신고’가 어색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열정과 사명감, 반짝이는 생도들의 눈빛을 볼 때마다 ‘아, 그래도 괜찮은 선택이었구나’ 싶다. 민간인의 군 교수 6개월 차, 앞으로도 ‘나라의 일원’ 답게, 엉겁결에 시작된 군 생활(?)을 유쾌하고 성실하게 이어가 보련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충성!
#사관학교교수 #사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