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사귄 유일한 친구 류지희 님.
그녀와는 2월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날 처음 만났다. 정확히는 오티가 끝나고 원복과 새 학기 물품이 가득 담긴 유치원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서 버스에서 내려 앞에 걸어가는 은후엄마를 발견하고 내가 말을 걸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가 좀 있는 영어유치원인지라 동네에서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하다 은후엄마를 발견하고 난 너무 들뜨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OOOO로 유치원 보내시나요? 저도 이번에 거기로 아이 보내요. 아이 이름이 뭐예요? 셔틀 같이 탈 친구가 있어서 너무 좋네요. 어머, 바로 옆 동인데 한 번도 못 뵀네요. 이사 오신 지 얼마 안 되셨구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승무원이었던 나의 경력을 살려 밝은 미소를 곁들인 산뜻한 인사를 건네며 우리의 관계는 시작됐다. 한 달 전 은후네는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유치원을 옮겨야 해 알아보다 주변의 수많은 유치원 중 이 유치원을 골랐다고 한다. 게다가 나처럼 워킹맘으로 일하다 남편의 일이 바빠지고 친정엄마의 도움에도 한계를 느껴 결국은 작년에 일을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럴 수가. 이것은 데스티니! 교육관이 비슷해 같은 유치원을 고르고 거기에 일을 그만두게 된 상황적인 맥락도 유사하고 3인 가족구성원도 동일한데 심지어 여대 나온 것까지 똑같다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등하원 시 나눈 대화만으로도 이미 은후엄마는 내 마음속 절친이었다.
은후엄마는 담백하고 은은한 연어 스테이크 같은 사람이었다. (실제로도 연어를 좋아해서 놀랐다) 작년에 전업주부가 되고 알게 된 동네엄마들과의 모임에서 어려움을 겪은 이후, 나는 아이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되는 엄마들에게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인연에 빗장을 걸어 잠근 흥선대원군 같은 내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것도 은후엄마였다. 그녀는 아이 유치원 적응 문제나 양육 태도 등 나의 고민을 같이 공유했고, 직장인에서 전업주부가 된 상황에서 오는 남편과의 갈등이나 자격지심 같은 감정도 깊이 공감해 줬다. 훅 치고 들어오는 법 없이 가까워지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하원할 때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우리 아이 간식까지 늘 챙겨줬고 육아에 지쳐하는 나와는 달리 놀이터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아이들과 열정적으로 놀아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브런치 작가에 붙은 소식을 전하자 그녀는 티라미수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받은 붉은 수수밭의 구절이 적힌 교보문고의 쪽지에 축하의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이렇게도 잔잔하게 다정하다니! 갑자기 나타난 온화한 이웃이자 유치원 메이트, 은후엄마에게 나와 우리 아이는 스며들고 말았다.
그런 은후네가 갑자기 미국에 가게 됐다. 일 년이긴 하지만 이제 막 마음의 문을 활짝 연 나에게 은후네가 떠난다는 소식은 상심, 그 자체였다. 의지하던 동료를 잃은 것 같은 기분. 딱 그랬다. 남편은 오래된 친구도 아닌데 뭘 그러냐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했지만, 남편은 절대 모른다.
나와 아이가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마음의 크기에 있어 시간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엄청난 추억은 아닐지라도 하원하고 은후네와 소소하게 보내는 그 시간이, 아침 일찍 나가 밤에 들어오는 남편으로 하루 종일 제대로 얘기할 상대 없는 날들을 보내던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는 나와 그녀만 알지 않을까.
다음 주에 떠나는 그녀에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그녀의 이름 류지희.
그녀가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고, 그녀의 아이는 면을 편식하며, 그녀의 남편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는 알았지만, 그녀의 이름은 몰랐다. 그러다 최근에 카카오톡으로 그녀에게 송금할 일이 있어 돈을 보내다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됐다. '만난 지 삼 개월 만에 이름을 알았는데 다음 주면 헤어지네요.' 하며 서로 웃었지만 그녀와 여태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는 자체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늘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았다. 회사에서도 OO씨, 친구들에게도 OO아, 친정집에 들어서면 엄마가 OO이니? 하고 불러주는 게 정말 좋았다. 그런데 주부로 집에 있다 보니 생각보다 이름 불릴 일이 없었다. 한 번은 남편에게 하루에 내 이름을 세 번 이상은 불러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은후엄마와 처음 인사할 때 전혀 거리낌 없이 누구의 엄마로만 나를 소개하다니....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제 공식적인 사회생활을 하진 않아도 사회성을 잃지 말자가 나의 첫 번째 목표였는데 나조차도 내 이름을 잊은 게 한편으론 슬프기까지 했다.
늦었지만 이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았다. 나는 '유치원 은후엄마'에서 '류지희(a.k.a. 은후엄마)'로 핸드폰 연락처도 수정했다. 연어 스테이크와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는 지희 씨, 미국에서 열심히 골프 배워 박세리가 되어 돌아온다는 지희 씨, 일 년 동안 무탈하고 행복한 하루하루이기를, 지희 씨의 가족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