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엄마와 딸의 전쟁.
요즘 들어 부쩍 아침에 눈 뜨기가 두렵다. 오늘은 또 옷 가지고 아이와 얼마나 실랑이를 할까 싶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삼십+n 년 간의 싸움 데이터로 싸움은 기세라는 걸 아는 내가, 그동안은 기세로 몰아붙여 겨우겨우 이기긴 했지만 최근엔 그마저도 힘에 부친다.
오밀조밀 예쁜 얼굴에 아기 여우 같이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나의 딸은 한 성깔 하는 아이이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은 빨갛게 불타오르는 맹수가 달려오는 태몽을 꿨다. 그래서 우리는 뱃속의 아이가 아들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분홍색으로 준비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귀여운 멘트를 듣고 설마 맹수 같은 딸이려나? 깔깔 웃으며 농담을 했는데, 역시나 사람이 함부로 입방정을 떨면 안 되는 법이다. 진짜 맹수 같은 딸이 온 것이다.
다섯 살의 여자아이에게 공주란 도대체 무엇인가. 애증의 티니핑 프린세스들 때문에 우리 아이는 공주에 미치고 나는 공주에게 시달리느라 미쳐버리기 직전이다. 다행히도 아이 유치원은 일주일에 딱 두 번, 화 금만 사복을 입지만 사복 입기 며칠 전부터 무슨 드레스와 무슨 구두를 준비하라며 사람을 들들 볶다가 결국은 초토화시켜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이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무조건 샤랄라한 치마다. 핑크, 보라 베이스를 벗어나서는 안 되고 반짝이와 시폰은 꼭 달려 있어야 한다. 무릎 위로 올라가는 길이도 절대 안 된다. 아이는 이미 공주님은 긴치마를 입고 치렁치렁하게 다닌다는 법칙에 사로잡혀 있다. 긴치마는 유치원에서 활동하기 불편할 것 같아 아무리 설득해도, '공주는 긴치마'라는 그녀의 무논리엔 당할 수가 없다.
원복 입고 등원하는 오늘만 해도 추운 날씨에 두꺼운 회색타이즈를 신긴 내게,
“엄마, 난 회색 싫다고 했지! 이 색은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기어코 빨래통에서 빨지 않은 분홍색 타이즈를 가져오는 그녀에게 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걸로 싸우다 유치원 셔틀을 놓치면 나는 20분 거리를 달려 그녀를 데려다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나의 하루는 아침부터 엄청난 피로감과 함께 꼬이고 만다. 영리한 그녀는 이런 전투 환경을 잘 활용해 셔틀 시간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나를 압박하는 것이다.
“구두가 네 개밖에 업짜나, 정말 신을 게 업써!!!”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신발장의 구두를 고르며 내게 마지막 한 발을 쏘고 떠나는 그녀.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면 벌써부터 아이의 사춘기가 두려워진다.
가해자일 땐 알 수 없는 피해자의 심정을 내가 피해자가 되어보니 너무 잘 알겠다. 유달리 반항적이고 고집 세던 나를 키우던 우리 엄마의 심정을 말이다. 엄마의 삼 남매 중에 나는 엄마 말을 가장 안 듣는 아이였다. 한번은 어릴 때 동물원으로 놀러 갔는데, 동생과 싸우다 엄마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자 화가 나서 어딘가에 혼자 숨어버렸던 적이 있다. 숨어서 엄마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나를 찾아다니던걸 지켜보다 엄마가 진이 다 빠졌을 때쯤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때 엄마의 눈물 젖은 얼굴, 애 낳고 키워보니 엄마를 골탕 먹이던 11살의 내가 얼마나 못된 애였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모범생인 언니와 동생이 순한맛이었다면, 나는 불닭볶음면같은 딸이었다. 엄마를 속이고 매일 학원 빠지고 놀다 일하던 엄마가 학원 선생님의 전화받는 게 일상이었고, 줄인 교복 치마와 파마머리를 하고 다니며 엄마를 기함하게 하기도 했다. 고2 때는 아빠와 싸우고 일 년 동안이나 말을 하지 않아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고, 대학 가서는 똑같은 용돈을 받는 언니와 달리 늘 흥청망청 쓰며 용돈 더 달라는 전화를 달고 사는 딸이었다.
그랬다. 나는 정말 매운 딸이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쓰다 보니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머리 풀고 석고대죄하고 싶은 심정이다. 엄마와 치열하게 다투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니 지금 공주 옷으로 씨름하는 우리 딸은 사랑스러울 정도다. 또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그렇게 말 안 듣던 나도 지금은 멀쩡한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 키우는 내내 나로 인해 상처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없는 사랑을 준 엄마 덕분이다. 나를 키운 엄마의 변치 않는 인내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래서 나도 오늘, 아이의 겨울 구두를 새로 주문했다. 구두가 네 켤레밖에 없어 속상한 우리 딸을 위해, 추운 겨울에 기모 처리된 따뜻한 다섯 번째 구두를 신으며 마음껏 공주가 되라고 말이다.
언젠가 남편이 장모님에게 손녀와 딸 중에 누가 더 예쁜지 물은 적이 있다. 본인의 딸에 흠뻑 빠져있던 남편은 당연히 손녀가 더 예쁘단 대답이 나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도 당신 못지않은 딸바보였다. 그것도 격동의 사춘기인 딸까지 사랑으로 키워낸 진짜 딸바보.
귀엽긴 손녀가 귀엽지, 하지만 우리 애가 훨씬 더 예뻤지. 얜 어릴 때 어딜 못 데려갈 정도였어. 사람들이 다 인형인 줄 알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