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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세계 Nov 29. 2022

편지를 찢다

89년 11월 23일


JJ 너에게 한 가지 용서를 빌어야겠구나!

무엇이냐고?

오늘 집에 와보니 책상위에 편지가 놓여 있더구나!

난 너무 기뻣단다. ‘친구’라고 초록색 글씨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말이야

그런데 편지를 몇 줄 읽고 난 뒤 JJ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너무 놀랐단다.

그 뒤론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깨끗이 찢어버리고 휴지통에 버려버렸단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것이다.

용서해 주겠니?

내가 널 만나기 전에 중 3때 알고 지내던 여자 아이가 있었단다.

지금까지 쭉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오늘 그 여자 아이에게 편지를 받게 되니 너무나도 JJ에게 미안하구나.

JJ 넌 나에게 하나이고 다른 어떤 사람도 널 대신 할 수가 없음을 알고 있겠지?

JJ가 항상 나에게 지난일로 미안해하듯이 이젠 항상 너에게 고개를 숙여야 겠구나.

항상 소중한 나의 JJ...


- 구름 -

어이 친구!

어이 친구...................(대답이 없다)

고개의 뻐근함을 넘기려고

잠깐 하늘을 보면

그리고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구구구구구우우..........

이게 무슨 소릴까 가만 쉿! 조용해!

아무소리도 안 들리잖아? 쉬잇 !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가장 깨끗한 곳에 가장 평화스러운 곳에

모양도 없고 힘도 없는

새하얀 구름이 지나 간다

왜 저리도 자꾸 바뀌나

선녀, 토끼, 강아지, 별, JJ...

넌 도대체 무엇이니? (대답이 없다...)

항상 우리에게 가장 강한 햇살이 비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그늘을

주고 온갖 곡식이 헉헉 거릴 때 시원한 비를 주고, 그런데 난 너에게 무엇을 주지?

같이 가줄까?

산마루까지 쫒아 갔지만 뿔뿔이 흩어지고 어디론가 가버렸네...


언젠가...

새벽녘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와서

아무도 없는 교실 창가에 홀로서서 저 멀리 바라보면...

잘 정돈된 가로수들이 각기 자기가 맡은 곳을 비추고 있단다.  

그리고 저 멀리 아득히 안개가 산을 맴돌 때는 정말이지 아름다움에 깊이 파묻혀 짐을 느낄 수 있단다.

또 하나 텅 빈 철길의 삭막함은 온몸을 으스스 모이게 한다.

그래 언젠가 철도의 끝을 본적이 있었지...

이름 모를 잡초로 둘러 쌓인 직사각형의 단단한 콘크리트가 꽉 막고 있더구나...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마치 인간의 삶이 아닌가?

구불구불하게 살아가다가 또는 반듯이 가다가 또는 오르막길, 내리막길...

끝내는 콘크리트에 부딪혀서 세월을 잊어버리는 그런 인간의 삶.

후우~ 입김이 창에 맺혔다가 이내 금방 사라지는 구나

다시 한 번 몸이 움츠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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