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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세계 Oct 15. 2022

동백골 해수욕장 반팅 - 마이크를 잡다!

그 신나는 고등학생들의 반팅 속으로


미팅이 있는 토요일, 밤새 잠을 설쳤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큰방과 작은 방, 두 칸 이었는데 아버지와 5남매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34년 넘게 5남매를 홀로 키워내신 대단하신 분이다.


큰방은 연탄아궁이에서 때는 불로 난방을 했는데 윗목의 장판이 누렇게 탈정도로 후끈했다. 작은방은 외풍이 심해 주로 공부방으로 사용했고 그런 탓에 아버지와 오남매가 큰방에서 따닥따닥 붙어 잠을 잤다.


난 막내아들이라서 잠자리를 고를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 주어졌는데 방 한쪽 벽에 있는 흑백 TV 바로 옆 자리가 내 차지였다.


한때 유행했던 심야 외화였던 ‘사랑의 유람선’을 하는 날이면 잠자는 척 실눈으로 슬쩍슬쩍 훔쳐보는 것이 최고의 재미였다.


그럴 때면 저쪽 벽 끝에서 항상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호형아 안자냐~”


오남매에 아버지까지 한방에서 이불을 덮고 자다보니 아궁이에 불이라도 꺼지는 날이면 식구들의 온기가 난방을 대신했다.


미팅 전날은 잔뜩 설레어 토끼눈으로 밤을 설치고 새벽녘에야 깊이 잠들어 결국 늦잠을 잔 것으로 기억난다.


부랴부랴 서둘러 집을 나섰고 그때 당시 정확히 무슨 옷을 입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무척이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11시쯤 드디어 동백골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몇몇 친구들이 먼저 와 있었고 여학생들도 저쪽에 한두 명씩 보이기 시작했다.


12시 가까이 되자 대부분 친구들이 보였고 넓은 평상 네 개가 붙어있는 곳으로 친구들이 모였다.


해수욕장 근처 슈퍼에서 사온 과자와 음료수들이 평상에 깔렸고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누가 가져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대형 녹음기가 준비됐고 유선 마이크가 연결돼 있었다.


난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여러분 아름다운 해수욕장 써니 할리데이입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반팅’


지금 생각하니 유치하기 그지없는 멘트라고 생각되지만 그 당시 친구들은 무슨 특별가수 무대라도 보는 양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그렇게 그날 반팅은 무르익기 시작했고 남녀 각각 20번까지 번호표를 뽑고 같은 번호가 나오면 짝이 되었다.


난 그때 그 친구가 짝이 되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소원대로 되지 않았다.


짝이 된 커플끼리 한 시간씩 자유 시간을 갖기도 했고 평상위에 앉아 수건돌리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놀이 하는 사람들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놀이였다.


그날 친구 한 놈이 오토바이를 몰고 왔는데 JJ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려고 시원하게 해변 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날 목에 스카프를 했는데 바람에 스카프와 머리카락을 잘 날리기 위해 무척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한 바퀴 시원한 해변 도로를 달리고 난 뒤 JJ가 가까운 곳에 오토바이를 멈추었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후카시’ 라고 하는 공 엔진을 붕붕 돌리기도 했다.


4월이 만들어준 따뜻한 태양과 시원한 바닷바람에 시간이 훌쩍 지나 3시가 조금 넘자 희비가 엇갈렸다.


계속 만나기로 약속한 짝도 있고 이미 짝을 잃고 방황하는 친구들도 눈에 띄었다.


반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되자 처음 반팅을 주선했던 남자 넷 여자 넷이 다시 뭉쳤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여수 시내에서 남자들이 영화를 보여주고 여자들이 빵을 사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때 JJ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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