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80*6+70*2+60*1
1년 만의 기차역은 비바람으로 우리 일행을 세차게 몰아쳤다.
마음이 편치 않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늘 내 눈과 마음에 남겨진 잔상 때문에 좀처럼 잠에 들 수가 없다.
몸도 피곤하다. 당일치기로 80대 후반 부모님을 모시고 조부모 기일 제사를 다녀오느라 새벽부터 긴장도 했을 터이다. 택시와 KTX도 소용이 없다.
제사 후 간단한 산보에서의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자꾸 생각의 꼬리를 문다.
70대 후반 고모는 며칠 후에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앞두고 계시다면, 바짓단을 올려 예전 수술자국을 보여준다. 동네에서 알아주던 농구 마니아였다.
80대 초중반인 작은어머니와 내 어머니는 걷기조차 불편해 사촌형과 카페에 남기로 했다.
어머니는 학창 시절에 운동회의 꽃이던 릴레이 선수였다.
80대 후반인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두 분과, 그리고 고모, 고모부는 30분 정도 연못주위를 걷겠다고 나섰다.
아버지는 꾸부정한 허리에 오른쪽 어깨가 처져 걷는다. 가슴을 펴고 걸어야 한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그때뿐이다. 넓은 응접실이 있는 사무실에서 전화로 누군가에게 지시하던 모습이 참 멋졌다.
막내 작은 아버지는 왼쪽 어깨가 무너져, 절뚝거리며 걷는다. 예전 사진첩에서 본 군대시절 근육질의 군인아저씨의 늠름한 모습이 기억난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몰아친다. 오늘따라 내 무릎도 시큰거리는 것 같다.
걸으며, 고모에게 물어봤다.
"고모는 혹시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50대로 가고 싶네."
"왜?"
"그때가 황금기였거든, 젊어 힘든 거 다 지나고, 어느 정도 살림으로 살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도 다 커서 편했지.."
막내 삼촌도 궁금해서 얼른 다가가 물어봤다.
"삼촌은 혹시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천천히 걸으며, 나를 쳐다보시며 조용하게 말씀하시는데 내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네?"
"살기 힘들었거든...."
"..............."
"열심히 사셨죠. 애들도 잘 커서 가정을 이루고,,,손주도 보시고 공부도 잘하고"
"..............."
괜한 것을 물어봤다는 후회로 마음이 무겁다. 기차에서도 한숨도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지금 세대가 가장 잘 사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세대일 수 있다는 기사를 어디에서 본 것 같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하지만 전쟁으로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우리 어른들의 근면, 성실, 헌신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한류도 K-POP도 이 풍요로움도 그 토대 위에 싹이 트고 이루진 것인데, 자꾸 새로운 것, 즐거운 것,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은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나, 꼰대인가요?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