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621년, 세대 우주선 오디세우스 격납고,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29만km
수십 년간 잊혀졌던 함선의 공기는 차갑고 메말랐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화물 컨테이너는 격벽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렬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오직 함선 생명유지장치의 낮은 허밍뿐. 그 소리마저도 공간이 너무 넓어 희미하게 흩어졌다. 질서. 효율. 침묵. 제시안 아르코스의 세계였다.
사람들은 유령처럼 움직였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최소한의 조명만이 켜진 어둠 속에서 발소리도, 잡담도 없이 오직 정해진 동선을 따라 흐르듯 이동하며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다. 의료팀은 부상자들을 분류하며 냉정한 프로토콜에 따라 바이오폼을 살포했다. 기술팀은 손상된 패널을 교체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시안의 계산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제시안의 통신기로 함선 관제 시스템의 경고가 들려왔다.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미확인 함선 접근. 식별 신호 [카론]. 조난 신호 수신. 선체 손상율 47%. 도킹 요청]
잿빛 지구를 배경으로 카론의 위태롭게 모습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선체 곳곳에는 파편에 긁힌 상처와 그을음이 가득했다. 절망적인 탈출의 증거였다.
제시안은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카론. 요청에 따르면 민간인 생존자 그룹의 탈출선이었다. 그는 자신의 보안채널에 짧게 명령했다.
"도킹을 허가한다."
[도킹 시퀀스 승인. 인터페이스 포트 개방 및 도킹 메커니즘 활성화 준비 완료]
도킹 포트의 기계적 클램프가 굉음을 내며 맞물렸다.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포트는 낮은 진동과 울림으로 두 함선 사이의 얇은 경계를 허물며 기나긴 침묵을 깨고 열렸다. 그리고 잠시 후 금속의 울림을 뚫고 살아있는 것들의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피와 땀과 눈물의 냄새. 아이들의 울음소리. 부상자의 신음. 그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절뚝이며 걸었다. 한 여인은 갓난아기를 필사적으로 품에 안고 있었고, 늙은 남자는 낡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부서질 듯 껴안고 있었다. 손에는 무기가 아닌 낡은 가방과 가족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러나 그들이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이었다. 아일리아 시데리스의 사람들이었다.
두 개의 현실이 격납고의 보이지 않는 선을 경계로 충돌했다. 한쪽은 서늘한 금속의 냄새가, 다른 한쪽은 비에 젖은 먼지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기계의 낮은 허밍 소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잠식당했다.
제시안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 무장한 보안팀이 도열했다. 그는 혼란의 중심을 향해 물었다.
"이 그룹의 대표는 누구지? 승선 절차를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을 부축하던 한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아일리아 시데리스였다. 그녀는 제시안을 향해 걸어 나왔다.
"내가 대표예요. 아일리아 시데리스. 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책임을 지고 있죠. 당신은..."
"제시안 아르코스 사령관이오."
제시안은 짧게 답했다. 그의 시선이 아일리아를 스쳐 그녀가 부축한 중상자에게 고정되는 순간 그의 신경망이 비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했다.
[개체명: 불명. 연령: 노년. 상태: 치명상. 생존 확률: 37%...]
그것은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었다. 의지가 아닌 본능이었다. 노인의 가슴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우선 부상자부터..."
아일리아가 말을 꺼내려던 순간 제시안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승선 인원 명단과 각 개인의 의료 기록, 기술 숙련도 데이터를 전송해주시오. 프로토콜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겠소."
아일리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데이터요? 지금 이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요. 명단이 아니라 사람이요."
"바로 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오. 시데리스."
제시안이 차갑게 응수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피 흘리는 노인을 향해 있었다.
"의료 자원은 한정되어 있소. 저 노인에게 투입될 자원으로 경상자 세 명을 살릴 수 있소. 테크노칼립스 이후 모든 재난 데이터가 증명하는 바이오. 감상적인 판단은 언제나 전체의 생존 확률을 떨어뜨렸지. 선택은 명확하오. 이 배는 병원이 아니라 방주요."
아일리아는 제시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잿빛 눈동자 속에서 그녀는 이름과 이야기가 모두 지워지고 오직 효율과 확률만이 남은 황량한 풍경의 세계를 보았다. 그녀는 순간 깨달았다. 이 남자는 악마가 아니었다. 그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길 잃은 순례자였다. 그리고 그 신념이야말로 자신이 지키려 했던 모든 존엄성을 파괴할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전체는 숫자의 합인가요, 아르코스 사령관? 한 사람의 존엄성을 저울질해서 더 가치 있는 목숨을 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살아남을 자격을 잃은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지구에서 배운 것 아니었나요? 방주에 탈 자격을 정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거예요."
두 개의 새벽이 하나의 지평선에 동시에 떠오를 수 없듯 그들의 첫 만남은 기나긴 밤의 시작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