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의 습격
A.T. 621년, 세대 우주선 오디세우스,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29만km
정적.
두 개의 우주가 충돌한 뒤 따라온 완전한 침묵이었다. 아일리아의 마지막 외침은 메아리가 되지 못하고 차가운 금속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제시안의 잿빛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아일리아와 그녀 뒤에 선 수많은 이름 없는 얼굴들을 마치 처음 보는 외계 종족처럼 분석하듯 바라보았다. 그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유기체들.
그가 입을 열어 이 비논리적인 변수들을 제거하려던 바로 그 순간. 함선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경보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금속의 뼈대가 뒤틀리는 물리적인 단말마였다.
[경고. 다수의 미확인 고속 물체 접근]
[발신 신호 패턴: 암호화된 분산 메쉬 네트워킹 프로토콜로 추정]
[충돌 예상 시간: 3분 12초]
메인 스크린에 붉은 점들이 피처럼 번져 나갔다. 가이아의 추격 드론. 적대적 위협으로 규정한 오류를 삭제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따라붙은 집요한 청소부들이었다. 이념의 대립조차 사치로 만드는 절대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서 격납고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다.
"도킹 클램프 분리 개시. 헥사, 인터페이스 포트 긴급 해제 프로토콜 실행. 레드 얼럿, 반복한다. 레드 얼럿."
제시안의 목소리는 얼음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즉시 브릿지로 향했다.
D-7 구역
D-7 구역은 공포의 밀물에 잠겨 있었다. 제시안의 냉정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각자 위치에서 충격에 대비하라!" 하지만 사람들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아일리아는 그 혼돈의 한복판에서 가장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이를 끌어안고 벽에 부착된 감응형 젤 시트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시트에 등을 기댔다. 그녀의 목소리는 위로가 아니었다. 절망의 파도 속에서 떠내려가지 않으려는 스스로를 향한 주문에 가까웠다.
브릿지
브릿지에 도착한 제시안은 모니터를 통해 그의 완벽한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D-7 구역뿐만이 아니었다. 함선 곳곳에서 공포에 질린 아일리아의 사람들은 물론 그의 훈련된 인원들마저 그 혼돈에 전염되어 얼어붙거나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의 완벽한 시스템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이라는 내부의 바이러스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제시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바로 그때 아일리아의 모습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그녀는 명령하는 대신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있었다.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행동.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녀를 중심으로 작은 질서의 섬이 생겨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를 등대 삼아 하나둘씩 시트를 찾아 몸을 의탁하며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기이한 혼돈 제어 알고리즘이 저 여자에 의해 작동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첫 번째 충격이 함선을 뒤흔들었다.
D-7 구역
늙은 짐승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시트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아일리아와 아이를 고치처럼 감쌌다. 바로 옆의 벽면 장갑재가 종잇장처럼 뜯겨져 나가는 굉음. 날카로운 파편이 젤의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 굉음과 함께 공기가 빠져나가는 비명. 모든 소음이 젤 속에서 흐릿하게 뭉개졌다. 그녀의 노래는 찢겨나간 강철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존엄을 외치던 목소리는 거친 진공의 비명에 먹혀버렸다. 스마트매터 실드의 작동으로 파손된 장갑이 복구되는 동안 그녀는 그저 아이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은 채 젤의 압박 속에서 숨 막히는 어둠을 견뎌낼 뿐이었다.
브릿지
"사령관님, 근거리 전투 발생! 라그랑주 L1 포인트의 함대로 추정. 가이아의 방어 시스템과 교전 중입니다!"
첫 충격의 여파가 가라앉자마자 부관이 절규처럼 보고했다. 뒤에서는 가이아의 드론이 앞에서는 최후의 전쟁의 첫 포화가 그들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헥사. 모든 회피 경로의 생존 확률을 재연산해."
제시안의 목소리는 강철처럼 울렸다.
"연산 중… 직접 회피 경로 생존 확률 1.2%. 교전 지역 통과 경로… 초기 교전 휘말릴 확률 87%… 하지만 이후 센서 교란으로 인한 추적 회피 가능성 발생. 최종 탈출을 아광속(Sublight) 드라이브로 상정할 경우..."
헥사의 연산이 이어지는 동안 부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사령관님, 저기야말로 죽음의 한복판입니다!"
"항로를 유지한다."
제시안의 결정은 헥사의 연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내려졌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가이아의 드론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더 큰 혼돈 속으로 뛰어드는 것뿐이다."
"아광속 드라이브를 준비해."
제시안의 명령에 브릿지의 모든 이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미쳤다는 눈빛이었다.
"헥사. 드라이브 준비 시간과 생존 확률의 상관관계를 최대치로 산출해."
"통상적인 아광속 드라이브 준비에는 최소 180초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전 지역 통과 속도와 적 드론의 추격 벡터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최대 72초. 72초 지점에서 불완전한 에너지 충전과 안전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감행할 경우…"
헥사의 목소리는 잠시 멈췄다. 이질적인 침묵.
"...생존 확률, 39%입니다. 단 이 경우 87% 확률로 로켓에 손상이 발생하며 비상 정지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번이 이 오래된 함선의 첫 드라이브입니다."
"충분하군."
제시안의 말 한마디에 시작되었다.
아광속 드라이브, 카운트다운 시작.
제시안은 함내 전체 통신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모든 비명과 경고음을 뚫고 함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현 시간부로 함선은 아광속 드라이브에 돌입한다. 생존 확률 39%. 각자 위치에서 충격에 대비하라. 반복한다. 각자 위치에서 충격에 대비하라."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희망도 절망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확률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아일리아의 개인 통신 채널을 열었다. 처음으로.
"시데리스. 당신의 사람들이 필요하오. 그들을 통제해."
D-7 구역
제시안의 목소리가 D-7 구역에 울려 퍼졌다. 생존 확률 39%. 그 잔인한 숫자에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바로 그때 아일리아의 통신기로 제시안의 목소리가 직접 들려왔다.
"그들을 통제해."
아일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복구 중인 선체 너머 저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의 섬광이 번개처럼 비쳤다. 그녀는 통신기를 향해 대답했다.
"통제가 아니에요. 함께 있는 거죠."
그녀는 자신을 감싼 시트 너머로 바닥을 구르는 사람들,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이들을 보았다.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래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시트에 몸을 맡긴 채 떨고 있을 늙은 역사가를 향해 그 너머의 모든 겁에 질린 영혼들을 향해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위로의 노래가 아니었다. 다가오는 폭풍우를 함께 견뎌내기 위한 필사적인 돛대의 노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얗게 타올랐다. 현실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감각. 금속이 비명을 지르고 뼈가 울리는 진동. 영원 같았던 지옥.
얼마나 지났을까. 끈적한 감각과 함께 몸을 감싸고 있던 젤이 천천히 수축하며 아일리아는 의식을 차렸다. 품 안의 아이는 기절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살아있었다. 모든 경고등이 죽은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관측창 밖은 완벽한 어둠. 모든 것이 고요했다. 그녀가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의식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차마 눈을 돌리고 싶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응급 보수된 선체 구멍의 흔적을 보았다. 그녀의 노래는 저 구멍을 막지 못했다. 그녀의 노래는 바닥에 쓰러진 저들을 구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가 없었다면 생존자들조차 공포의 광란에 휩싸여 서로를 짓밟으며 차가운 바닥 위에서 영원한 침묵 속에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아주 희미한 깨달음이, 끔찍한 진실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가 지키려 했던 존엄성. 그것은 살아남았다. 자신이 경멸했던 저 차가운 남자의 그 잔인한 확률 게임 덕분에.
그 순간 헥사의 목소리가 함선 전체에 나지막이 울렸다.
"아광속 드라이브 비상 정지. 모든 송신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관성 운행(Coasting)으로 전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