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계약 2

차가운 거래

by 여행자 제오키

A.T. 621년, 세대 우주선 '오디세우스' 회의실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4AU


고요했다.


아광속 드라이브가 남긴 지옥 같은 진동이 사라진 함선은 태양계 어디선가에서 미아가 되어 표류하고 있었다. 비상등의 붉은 빛이 두 사람의 지친 얼굴 위를 주기적으로 쓸고 지나갔다. 빛이 닿을 때마다 제시안의 눈에는 냉정한 계산이, 아일리아의 뺨에 남은 상처에는 마르지 않은 분노가 드러났다. 돌아갈 수 없는 집을 저 멀리 등진 채 닿을 수 없는 어둠 속을 떠도는 처절한 고독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두 사람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스크린에는 함선의 피해 상황과 남은 자원의 목록이 차가운 숫자로 떠 있었다.


[사망자 : 117명]

[중상자 : 258명]

[드라이브 수리 예상 시간 : 최소 3주]

[잔여 식량 : 34년 8개월]

[잔여 의료 자원 : 61%]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오직 스크린의 숫자만을 응시했다. 그 숫자 하나하나가 비명과 죽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당신의 사람들이 내 시스템을 붕괴시킬 뻔했소."


제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과나 자기반성이 아니었다. 냉정한 책임 추궁이었다. 그는 스크린의 사망자 117명이라는 숫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의 명령 체계는 완벽했소. 하지만 당신의 사람들이 일으킨 비합리적인 공포가 모든 것을 마비시켰지. 나의 훈련된 인원들마저 그 혼돈에 전염됐고. 그 결과가 저 숫자요."


"그 숫자가 몇 배는 더 많아질 수도 있었죠."


아일리아가 받아쳤다. 뺨에 남은 상처가 따끔거렸다.


"당신의 완벽한 명령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그들은 서로를 붙잡았어요. 당신의 방식대로라면 저 사망자 숫자는 당신의 부하들을 포함해 훨씬 더 늘어났을 겁니다. 당신의 기계는 강철을 뚫지 못했으니까."


"착각하지 마시오 시데리스."


제시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서늘한 경멸이 실렸다.


"내가 그 확률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면 당신의 노래는 그저 아름다운 장송곡이 되었을 뿐이오. 우리는 모두 죽었을 거란 말이오. 현실을 직시하시오. 이 방주의 책임자는 나요. 모든 기술 모든 무기 모든 자원의 통제권이 내게 있소."


팽팽한 긴장감. 힘의 우위는 명확했다. 아일리아는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뭘 원하시죠 사령관? 당신의 완벽한 시스템이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모두 우주 밖으로 버리기라도 하시겠어요?"


"…필요하다면."


제시안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냉정한 언어 뒤로 테이블 아래에 놓인 그의 손이 아주 천천히 단단하게 움켜쥐어지는 것을 아일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일리아의 존재 자체가 그의 시스템이 가진 치명적인 맹점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일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스크린에 뜬 '사망자: 117명'이라는 차가운 숫자에 닿았다. 그녀는 아주 잠시 그 숫자를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죽은 자들을 위한 애도이자 산 자들을 위한 맹세였다.


"좋아요. 그럼 거래를 하죠."


아일리아가 말했다. 그녀는 스크린의 잔여 식량과 의료 자원 항목을 가리켰다.


"모든 자원은 생존자 전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해요. 기술자든 아이든 부상자든 모두가 이 방주의 동등한 주인입니다. 공동체의 내적 질서 유지와 윤리적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제가 갖겠어요. 우리는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인간이니까요."


"미친 소리."


제시안은 코웃음 쳤다.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주는 것은 내 옆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두는 것과 같소. 이 함선의 로켓 손상률은 심각하오. 기술자와 보안 인력에게 자원을 우선 배분하여 수리를 끝내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이 금속 관 안에서 서서히 죽어갈 뿐이오. 당신이 말하는 평등은 다 함께 죽자는 말의 감상적인 다른 표현일 뿐이오. 받아들일 수 없소."


그의 거절은 단호했다. 협상은 끝나는 듯했다. 아일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그때 제시안의 시선이 홀로그램 스크린의 한쪽 구석 조용히 갱신된 데이터로 향했다. 헥사가 추가한 보고였다.


[아일리아 시데리스의 개입 이후, D-7 구역의 패닉 지수 47% 감소]

[공동체 안정성 지수 22% 상승]


무의미한 데이터.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결과. 그의 완벽한 방정식에 들어온 이해할 수 없는 변수. 그는 스크린에 떠 있던 경고 알림 하나를 손짓으로 무심하게 껐다. 마치 새로운 변수 값을 입력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그의 방정식에 인간이라는 변수가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조건을 수정하지. 자원의 분배는 내가 결정하오. 우리는 제한적인 재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원은 유한하오. 엄격한 통제 없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소. 하지만 그 결정의 공정성을 감시하고 이의를 제기할 권한을 당신에게 주겠소. 윤리적 문제 또한 당신의 자문을 구하겠소. 단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다."


아일리아는 잠시 그를 노려보았다.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이 강철의 세계에서 그녀가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영토라는 것을.


"…좋아요."


그렇게 협정은 맺어졌다. 악수가 아닌, 서로를 향한 불신의 차가운 인정으로. 그것은 신뢰가 아닌 공동의 심연 위에 놓인 위태로운 다리였으며, 훗날 그들의 아이들이 서로 다른 새벽을 향해 걸어가게 될 갈림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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