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621년, 오디세우스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40AU
3주간의 사투 끝에 오디세우스의 드라이브 시스템은 임시로 봉합되었고, 함선은 절뚝이는 거인처럼 태양계 끝 어둠 속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함선 곳곳의 공용 스크린에 희미한 푸른 점이 떠올랐다. 이제는 맨눈으로 식별할 수도 없는 하나의 픽셀에 불과한 존재. 지구였다.
엔진실, 한 늙은 기술자는 기름 묻은 손을 닦다 말고 먼지 쌓인 보조 모니터에 떠오른 그 점을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그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스치지 않았다. 그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 혹은 이미 닫혀버린 오래된 회로도처럼 보일 뿐이었다.
임시 거주 구역의 한쪽 구석에서는 한 여인이 아기를 품에 안고 거대한 메인 스크린을 향해 속삭였다.
"아가, 저게 엄마 아빠 우리 아가가 태어난 곳이란다. 아주…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제시안 아르코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함선 전체에 울려 퍼졌다.
"현 시간부로 과거 데이터 소거 프로토콜을 실행한다. 함선의 모든 시스템에서 지구와 관련된 불필요한 데이터를 삭제한다. 구시대의 지도, 문화 기록, 관련 없는 개인 로그.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모든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미래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시스템 최적화다."
제시안의 명령에 따라 데이터 서버에서 삭제 작업이 시작되었다. 삐. 삐. 삐. 과거의 기록들이 시스템에서 지워질 때마다, 차갑고 규칙적인 처리 완료 알림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데이터 서버
카이렌. 그는 제시안을 존경했지만 때로는 그의 방식이 너무나… 공허하다고 느꼈다. 그의 손가락이 클래식 음악 라이브러리 폴더 위에서 멈칫했다. 삭제. 이 버튼 하나로 바흐와 베토벤, 수천 년간 인류의 영혼을 울렸던 모든 선율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는 아주 짧은 순간 망설였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 데이터 패드에 작은 파일 하나를 몰래 복사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뎠을 때, 그 위대한 성취를 축하하며 울려 퍼졌던 아주 오래된 교향곡이었다.
그가 왜 그랬는지 그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선율이 사라지면 별을 보며 우주를 꿈꾸던 인류 최초의 그 발걸음마저 삭제되는 것 같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D-7 구역
D-7 구역은 117개의 작은 별들로 가득했다. 아일리아가 켠 촛불 하나하나가 희생자의 이름표 앞에서 흔들렸다. 그 앞에는 그들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 놓여 있었다. 닳아빠진 아이의 신발 한 짝. 마지막 가족사진이 떠 있는 깨진 데이터패드. 살아남은 자들은 그 유품들 앞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117개의 이름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고향을 잃었습니다. 제시안 사령관은 이것을 잊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슬픔과 고통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억이야말로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는 마지막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사람들의 흐느낌이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살아남은 자들의 존재 증명이었다.
차가운 기계의 삭제음 위로 울려퍼지는 아일리아의 불규칙하고 슬픔에 찬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겹쳐 들려왔다. 기계의 규칙적인 삭제음과 인간의 불규칙한 흐느낌. 함선은 두 개의 다른 애도 속에서 과거를 지워가고 있었다.
구석에서 오르사는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드론의 습격으로 남편을 잃었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은 고장 난 공기 정화 장치의 패널을 열고 회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애도는 산 자들이 다음 숨을 쉴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가 복잡한 회로 속 아주 작은 나사 하나를 조이려 할 때였다. 남편이 드론의 공격에 휩쓸리던 그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불꽃처럼 스쳤다. 그녀의 손이 격렬하게 떨리며 '팅'하는 소리와 함께 나사가 바닥의 금속 격자 사이로 떨어져 버렸다.
"젠장!"
오르사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이 중요한 순간에조차 자신을 방해하는 제어할 수 없는 슬픔,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해서였다. 곁에 있던 젊은 여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왜 함께 노래하지 않으세요?"
오르사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어두운 격자 너머를 쫓고 있었다.
"죽은 자를 위한 노래가 고장 난 산소 순환 장치를 고치지는 못하니까. 산 자는… 살아야지."
각자의 방식
마침내 푸른 점이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완전한 어둠.
제시안은 깨끗하게 정리된 시스템 상태 창을 보았다. 과거라는 부채가 사라진 완벽한 방정식. 시스템 효율성 100%. 그의 텅 빈 눈동자에 하나의 완벽한 녹색 표시등 불빛만이 차갑게 반사되었다. 비로소 그는 미래를 향한 항로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아일리아는 117개의 흔들리는 촛불 빛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깨지고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은 인간의 현재. 그녀는 이 현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미래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