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내가 같이 찾아 줄까?"

by 해린C

드와이트는 남자의 찢어진 살갗에 붙여 둔 헝겊을 들어 올려 그 안의 엉긴 약초를 떼어낸 후 상처를 주의 깊이 살폈다.


“음, 며칠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잘못하면 덧날 수도 있겠어요. 일단 다시 한번 처치를 해 봅시다.”


고된 일을 하다 다친 것인지, 남자의 팔뚝에 깊고 길게 나 있는 상처는 계속 쳐다보고 있기에는 어쩐지 처참한 기분이 들게 해, 에젤드는 공연히 딴청을 피우듯 고개를 돌려 해가 어스름이 들어오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방에 가구라고는 바닥에 곧 주저앉을 듯 낡아 빠진 침대 두 개, 그리고 에젤드와 드와이트가 각각 앉아 있는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침대에 걸터앉아 치료를 받는 남자는 드와이트가 마른 약초 덩어리를 떼어 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지 몸을 부르르 떨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남자의 신음을 애써 못 들은 척하며 딱히 눈 둘 곳도 없는 어두운 천장으로 눈을 들어 올린 에젤드는, 누군가 연약한 힘으로 자신의 팔을 잡아 흔드는 느낌에 놀라 고개를 내렸다. 마구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꾀죄죄한 옷을 입은 서너 살의 깡마른 여자아이가 조막만 한 손에 든 작고 얇은 책 한 권을 불쑥 들이밀며 말했다.


“읽어 주세요.”

“응?”

“삼촌이 안 와서…….”


무엇이 그토록 서러운지 아이는 울음을 참으려 입을 삐쭉이며 고개를 한쪽으로 푹 꺾었다.


“내가 책을 읽어 줄까?”


에젤드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이가 혹 눈물이라도 떨굴세라 얼른 되물었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에젤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힘 있게 끄덕였다.




매우 신이 난 아이는 에젤드의 손을 잡아끌어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창문 아래에 놓인 자그마한 벤치에 기어올라 앉더니 에젤드의 손도 끌어당겨 자기 옆에 앉혔다. 에젤드가 자리를 잡고 앉자 아이는 들고 있던 책부터 에젤드의 손에 착 넘겼다.


“어디서부터 읽어 줄까?”


아이는 마치 책을 읽기 전 하나의 의식처럼, 먼저 에젤드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에젤드의 팔과 자기 팔을 꼬옥 맞붙였다. 아이에게서 전해지는 싱그럽고 순한 온기에 에젤드의 입가에는 해말간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아이가 단 일편의 고민도 없이 작은 두 손으로 책의 표지를 야무지게 넘기자, 첫 번째 페이지 위로 우수수 쏟아져 내린 가을 햇살이 정갈하게 쓰인 두 개의 이름을 환히 비추었다.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하나의 이름은 이쪽에서 또 하나는 저쪽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에젤드는 도자기 위에 섬세한 선을 그려 넣는 것만큼이나 정성스럽게 그 이름들을 읽어 나갔다.


“클라라. 데이지.”


아이는 입꼬리를 함빡 올려 웃으면서 골이 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 네 이름은 뭐야?”

“클라라! 클라라예요. 클라라.”


클라라는 자기 가슴을 콩콩 치며 두 다리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어 댔다.


“그렇구나. 그럼…….”


에젤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고 물었다.


“너는 데이지겠구나?”


그녀는 벽 모퉁이의 그림자 속에 숨어 조용히 둘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소녀에게 물었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벽에 붙은 채 그림자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심 어린 눈빛이었지만, 에젤드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이 읽을래?”


데이지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지만, 곧 발소리도 나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에젤드의 빈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동생과는 다르게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았으나, 펼친 책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시선은 어찌하지 못했다. 책장 위에 쓰인 이름을 말끄러미 쳐다보던 아이가 불만 섞인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내 이름은 안 예뻐요.”


그새 마음을 연 것인지, 책에 쓰인 자기 이름을 손가락으로 톡톡 짚으며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이 글씨가? 아니면 네 이름이?”

“내 이름이요.”

“예쁘기만 한데?”

“아니에요.”

“음…….”


에젤드는 샐쭉이 아랫입술을 내민 데이지의 얼굴을 빤히 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마음에 들어. 네 이름과 내 이름에서 같은 소리가 나거든.”

“정말요? 언니 이름이 뭔데요?”

“내 이름은, 에젤드야. 잘 들어 봐. 에, 즈, 에을드. 그리고 데이, 즈, 이. 똑같이 ‘즈’ 소리가 나잖아.”

“아!”


데이지는 그 말에 기분이 퍽 좋아졌는지 방실방실 웃으며 해맑은 눈으로 에젤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나는? 나는 없어요?”


클라라가 에젤드의 팔을 흔들며 물었다.


“음……. 에즈, 에을, 드. 그리고 크, 으을, 라라. 우리는 ‘을’ 소리가 똑같네.”

“와아!”


클라라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데이지도 꽃망울 같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겨우 그만한 사실을 알았다는 이유로 뛸 듯이 좋아하며 까르르 웃어 대는 자매를 보고, 에젤드 역시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언니 이름도 여기에 써 주세요.”


데이지의 부탁에 에젤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지. 써 줄 만한 게 없는데……. 연필이 있니?”


데이지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에젤드가 너무나 아쉬워하며 미안함을 드러내자, 데이지는 그 미안을 덜어 주려는 듯 냉큼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그럼 책 읽어 주세요. 우리 지난번에 여기까지 봤어요.”

“그럴까?”

“네! 네! 읽어 주세요!”


클라라도 흥분하여 작은 주먹으로 제 다리를 콩콩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래, 그럼 여기부터……. ‘토끼가 말했습니다. “어휴, 저 답답한 거북이 좀 봐. 저렇게 느린 걸음으로 어떻게 나를 따라잡겠어?”’”


에젤드가 나긋한 음성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자, 두 자매는 동시에 에젤드의 양쪽 팔에 착 달라붙고는 이내 집중하여 듣기 시작했다. 책 속으로 금세 빨려 들어가는 두 아이의 이마가 에젤드의 품 안에서 점점 가까워져 어느새 바짝 마주 닿고 있었다.




“일곱, 여덟, 아홉……. 숨었어요?”


데이지가 벽에 붙어 눈을 가린 채 숫자를 세는 동안, 에젤드는 우왕좌왕하다가 집채 한구석에 붙어 있는 좁은 헛간 안으로 몸을 숨겼다.


“응, 숨었어!”


마당에서 숨을 데라고는 딱 그곳뿐이라 일단은 숨고 보았지만, 그곳도 숨기에 아주 적절한 장소는 아니었다. 문짝 대신 드리워진 성긴 수렴은 그나마도 그리 길지가 않아서, 땅에서 두 뼘 정도의 길이만큼은 모자라 아래로 훤하게 드러난 빈틈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좁은 헛간 안은 세간을 너저분하게 쌓아 놓은 층층의 선반이 온 벽면을 둘러싸고 있어, 물건을 쳐서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똑바로 서 있기보다는 쭈그리고 앉는 편이 나았다.


에젤드의 확답을 들은 두 아이는 일시에 힘차게 소리쳤다.


“열!”


분명 숨을 곳은 딱 한 곳뿐인데, 아이들은 숨은 사람을 찾으려는 것보다는 마당을 이리저리 누비며 뛰는 것이 목적인 양 깔깔거리며 마구 달음질을 해 댔다. 어찌나 열심히 뛰는지 숨이 턱에 닿아 헉헉 소리를 내면서도 웃음도 뜀박질도 멈추지를 않았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하도 천진난만하여, 웅크리고 앉아 그저 생글생글 웃고만 있는 에젤드의 시간은 차오르는 행복감으로 한 치의 공백도 없이 빽빽이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지칠 만도 한데, 이제는 찾을 때도 됐는데 싶을 때쯤이었다. 총총거리며 정신없게 구는 아이들의 발소리와는 다른, 보다 무게가 있게 저벅저벅 다가오는 하나의 발소리에 에젤드의 귓문이 열렸다.


“내가 같이 찾아 줄까?”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와 닿자, 미소로 활짝 펴졌던 에젤드의 입술이 사르르 오므라들었다. 순간 또렷한 빛을 띤 에젤드의 눈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헤매듯 분망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드 삼촌!”


흥분해서 달려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클라라가 눈물겹게 찾던 삼촌의 정체를 깨달은 에젤드는, 마침내 보물섬을 발견해 낸 선장처럼 흡족한 숨을 길게 내쉬고 긴 숨 끝에 찾아온 미소를 붙잡았다.


이윽고 에드윈의 목소리가 더욱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누구를 찾고 있어?”

“에젤드 언니!”

“그래? 내가 아는 사람이네.”

“정말요? 언니 너무 좋아요. 착해요.”


데이지가 말하자 클라라가 거들었다.


“그리고 예뻐! 예뻐!”


에드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우리 같이 찾아 보자.”


에드윈이 말하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윈의 발이 뚜벅뚜벅 걸어와 코앞까지 다다르자, 수렴 너머의 에젤드는 입술을 꼭 깨물고 빨라지는 호흡을 참았다. 무릎을 끌어안은 두 팔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데이지가 말했다.


“같이 찾아요, 삼촌! 나 언니한테 선물 줄 거예요.”


클라라도 발을 콩콩 구르며 외쳤다.


“나도! 나도 줄 거야!”

“그래? 에젤드를 찾으면 나도 너희들에게 선물을 줄게.”

“와아!”


에드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소리를 내지르며 헛간 쪽으로 와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수렴 아래의 뚫린 공간으로 얼굴을 들이밀고는 서로를 밀쳐 대며 깔깔깔 신이 나게 웃어 댔다.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순박한 얼굴에, 어느새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떨친 에젤드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아이들 사이로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와 수렴의 밑 부분을 잡고, 그것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실상 가림의 의미가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성기게 엮은 수렴을 사이에 두고 이미 해처럼 밝은 서로의 얼굴을 어른어른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은, 수렴이 걷힌 후 환해진 시야 안에 들어온 서로를 마침내 아주 달갑고 기쁘게 맞이했다. 에젤드를 내려다보는 에드윈의 정다운 미소와, 에드윈을 올려다보는 에젤드의 해사한 웃음이, 그 순간의 바람만큼이나 산뜻하게, 그때의 햇볕만큼이나 따사롭게 마주쳤다. 눈을 피하지도, 미소를 거두지도 않은 채, 마치 시간이 둘의 모습을 그 자리 그 하늘 아래에 붙박아 놓은 것처럼, 둘은 서로만의 고요 속에 그렇게 긴긴 촌각 동안 머물러 있었다.


어느 순간 귓전을 스친 바람의 소리가 에드윈을 깨운 것일까, 그는 몹시 들떠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자, 자, 숙녀분들.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죠? 에젤드 언니에게 선물 주기로 했잖아. 무슨 선물을 줄 거야?”


‘선물’이라는 단어에 일순 정신이 번쩍 든 클라라는 웃음을 뚝 멈추더니,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주지 않고 조그만 손을 내뻗으며 에젤드에게 와락 뛰어들었다. 아이는 에젤드의 품에 폭 안겨 말했다.


“이게 내 선물이야!”


순수의 기운을 아낌없이 뿜어내는 작은 생명체를 품어 안은 에젤드가 놀라움과 감격에 겨웠을, 아니 아직 다 겹지도 못했을 때, 이번엔 데이지가 달려들어 에젤드의 목에 매달리고는 그녀의 뺨에 꽃잎 같은 입술을 쪽 맞추었다.


“이건 내 선물!”


비로소 놀라움과 감격에 온전히, 아니 넘치도록 겨워진 에젤드는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이 상황이 과연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에드윈을 올려 보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충만히 느끼고 받아들이라는 듯, 에드윈은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 끄덕이는 고갯짓으로 답했다. 에젤드는 그의 답에 응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두 팔로 아이들을 꼬옥 끌어안았다. 콩닥콩닥 뛰는 작은 심장의 박동과 보드라운 살결, 향긋하게 전해지는 체온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려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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