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정원은 한구석도 헛되이 쓰이는 공간이 없었다. 곳곳에 장비된 높은 촛대들은 제 몫을 다하여 어슬어슬하게 내려앉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여기저기 놀이가 벌어진 곳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깔깔거리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썩였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는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졌다. 하얀 천막들에서는 그 안에서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분란하게 움직였으며, 바깥에 차려진 음료와 음식 테이블은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로 아주 인기가 높았다.
활기가 넘치는 파티장의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발이 길쭉한 촛대들 사이를 뛰다시피 빠르게 활보하고 있었다. 시끌시끌하게 뒤섞인 잡다한 소리들 사이로 신이 난 에드윈의 목소리가 쑥 끼어들었다.
“열 개 중에 아홉 개나 성공하다니! 당신은 정말 뭐든 잘하나 봐요!”
“고작 고리 던지기인걸요.”
“고작이라뇨! 덕분에 케이크를 종류별로 맛볼 수 있게 됐는데. 상품이 이렇게 푸짐할 줄 알았으면 나도 좀 더 집중해서 던져 볼 걸 그랬어요. 자, 이제 두 개 남았어요. 뭐 먹을래요? 아몬드? 배? 아니면 둘 다?”
“저는…… 배가 좋습니다.”
에드윈은 들고 있던 쟁반에서 얇게 저민 배가 올려진 자그마한 케이크 하나를 재빨리 에젤드에게 건넸다. 케이크를 받아든 에젤드가 그 위에 올려진 꿀에 절인 배의 향을 맡아 보고, 하나 남은 아몬드 케이크를 집어 든 에드윈이 입을 벌리려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두 사람의 동작이 일시에 뚝 하고 멈추었다.
저기 눈앞에서 아이 셋이 울음을 으앙 하고 터뜨리며 무언가에 쫓기듯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마치 네댓 살 어린아이인 양 서럽게 우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위태로워 보이는지 서둘러 다가가 어깨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드윈이 허리를 굽히고 물었다.
“너희들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삼촌한테 말해 봐.”
“괴물 같아요!”
그 말을 한 아이가 더욱 크게 소리 높여 울자, 나머지 아이들도 따라서 몹시 울기 시작했다.
이번엔 에젤드가 물었다.
“괴물이라니? 나쁜 사람을 만났어?”
“아니요. 미로요! 미로가 너무 무서워요!”
“미로가?”
두 사람은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너무 크게 우는 아이들 때문에 주변의 시선이 몰리니 일단은 아이들을 달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에젤드는 들고 있던 케이크를 그나마 울음이 잦아든 한 아이에게 내밀었다.
“이거 아주 맛있는 거야. 그만 울고 같이 나눠 먹어.”
“자, 자. 이 아몬드 케이크도 너희들 먹어. 옳지. 그런데 너희들끼리만 있었니? 어른들은?”
에드윈이 질문을 던지자마자 등 뒤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두 남녀가 심하게 우는 아이들을 보고 놀라 내달려오고 있었고,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는 아주 대성통곡을 하며 에드윈과 에젤드를 지나쳐 그리로 와다닥 달려갔다. 부모의 품에 안기자마자 서로 앞다투어 무슨 일을 겪었는지를 하소연하듯 말하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괴물 같은 미로야!”
“못 나올 뻔했어!”
“다신 안 갈 거야!”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이서 같은 호기심을 품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아! 틀렸습니다. 완전히 갇혔어요.”
좌절한 에젤드가 힘이 다 빠진 채로 서 있던 자리에 풀썩 주저앉자, 에드윈은 곤혹스러운 듯 이쪽으로 뚫린 길도 보았다가 또 저쪽 길도 보았다가 하며 갈팡질팡했다. 골목골목마다 바닥에 설치된 등불도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 이쪽이 되었든 저쪽이 되었든 보이는 모든 길이 막혀 있는 듯 보이자, 그도 역시 체념하여 에젤드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성인의 키를 훨씬 웃도는 상록의 생울타리는 풀이 죽어 쪼그려 앉은 두 사람의 등 뒤에서는 더욱더 드높은 성벽과도 같아 보였다.
에드윈은 진 빠진 얼굴로 웅얼거렸다.
“집에 이렇게 큰 미로가 있다니……. 아이들이 출구를 찾은 게 기적이었네요.”
에젤드가 멍하니 땅만 바라보며 그의 말을 맞받았다.
“그러게요. 어떻게 나갔을까요?”
단지 그 대마디 말만 주고받은 두 사람은 길 찾기를 쉬어 가는 것처럼 말하기도 쉬려는 듯 잠시 넋을 놓고 아득한 정적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에드윈은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턱을 고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에젤드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그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에젤드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웃음에 전염된 듯 그녀 역시 영문도 모르면서 그를 따라 웃다가, 얼핏 이유가 궁금해졌는지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그냥요. 우리 모습이 우스워서. 어쩌면 아까 그 아이들의 모습이 잠시 후 우리 모습일지도 몰라요.”
에드윈의 말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눈물 콧물을 흘리던 아이들이 떠오르는 듯 에젤드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이번엔 에드윈이 그녀를 따라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피로와 혼돈에 지친 상태에서 무방비로 터져 나온 웃음은 한 번 시작되니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들처럼 마구 웃던 두 사람 중 먼저 평정을 되찾은 건 에드윈이었다. 그는 살포시 미소를 띠고는 아스라이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정말 귀여웠어요. 루이스와 스콧, 그린처럼.”
그가 낯선 이름들을 열거하자 에젤드는 그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농가에서 함께 지냈던 삼 남매예요. 처음 만났을 때 첫째 루이스가 딱 그 아이들 또래였죠.”
“루이스와 스콧, 그리고……?”
“그린이요.”
“그린.”
“그린은 겨우 네 살이었어요. 위의 두 오빠들 뒤를 늘 졸졸 쫓아다녔죠.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루이스는 순박하고 사려 깊었고, 스콧은 똘똘하고 신중했어요. 어렸는데도 가난 앞에 용감했고, 어리석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지혜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보고 싶으십니까?”
“무척이요. 아이들은 쑥쑥 자라는데, 그사이 어떻게 컸을지 너무 궁금해요. 벌써 떠나온 지 1년 반이나 되었으니까요.”
“언젠가…… 아이니스도 떠나시겠지요?”
추억에 잠겨 있던 에드윈의 눈동자가 돌연 위로 둥 떠올랐다. 그는 에젤드를 피뜩 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떠나시는 게 좋은 거죠.”
답이 없는 에드윈을 대신해, 에젤드가 쓸쓸함을 품고 애써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스스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에드윈의 결론은 달랐다.
“나는 이대로가 좋아요.”
또렷이 커진 에젤드의 눈을 그대로 응시하며 에드윈이 말을 이었다.
“나는 아이니스가 좋아요.”
에드윈의 눈동자를 따라 양옆으로 움직거리는 에젤드의 눈동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을 품었다.
“이런 산골 유배지가요? 아이니스를 제대로 다녀 보신 것도 아니잖아요. 무엇이 좋단 말씀이세요?”
“그야 당신이 있으…….”
물어볼 것이 뭐 있냐는 듯 망설임 없이 답을 주던 에드윈이었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 등 뒤에서 깜짝 놀래 주기라도 한 듯 흠칫 놀라며 말을 멈추고는 얼빠진 사람처럼 끔뻑끔뻑 에젤드를 쳐다보았다. 에젤드의 눈은 그의 눈 속에 맺힌 투명한 빛을 놀랍도록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등불 위로 비치는 그녀의 눈망울이 영령하게 반뜩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문장의 빈칸을 묻고자 함이었을까, 아니면 물을 필요도 없이 이미 답을 알아채 버린 것이었을까.
하지만 에드윈은 그녀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의문도 추측도 더 깊어지기 전에, 에드윈은 늦게라도 서둘러 자신의 불완전한 문장을 완성시켰다.
“…… 있고, 그리고 헤즈, 헤즈메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요.”
왜인지 메어 가는 목소리로 그답지 않게 더듬거렸다. 겨우 말을 마치고도 에드윈은 괜스레 마른기침만 쿨럭쿨럭해 댔다.
“맞습니다. 헤즈메리는 참 아름답지요.”
기침을 한다고 등을 다독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에젤드는 공연히 둘 데 없는 눈동자로 밤하늘의 희뿌연 달만 올려다보며 그의 말에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어, 그…… 헤즈메리…….”
아이니스에 헤즈메리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에드윈은 그 감사한 이야깃거리가 겨울바람에 섞여 사라지기 전에 냉큼 붙잡아 다시 입술에 담았다.
“너무 안타까워요. 헤즈메리…… 참 예쁘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사람이 안, 안 다녀서.”
주제는 어찌어찌 붙잡았을지 모르나, 간신히 토막말만 띄엄띄엄 뱉어 내는 그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고맙게도, 에젤드는 또 한 번 그의 말을 성심껏 받아주었다.
“아이니스에는 그 숲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거든요. 그 때문에 저 또한 그 숲의 아름다움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지요.”
“어째서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자 에드윈의 흐트러진 집중력이 다시 한곳으로 모아지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의 안절부절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아이니스 주민들에게 그 숲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그런 곳이니까요. 헤즈메리 성은 포악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남작이 살던 곳이고, 헤즈메리 숲은 일부가 그 남작의 사유지인 곳이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른들은 헤즈메리라는 이름만 나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그 사람에 대해 넌더리를 내며 이야기했어요. 그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고 경계했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 땅을 밟았다는 말만 들어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몹시 고통을 주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은 헤즈메리 숲을 쳐다보기만 해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서서 어떻게든 그곳을 피해 다녔는데, 어찌나 공포스러웠는지 산적들마저도 그 숲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정도였답니다. 그러다가 남작이 재산을 상속할 가족도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사망하자 남작의 땅은 국유지로 전환되었고, 그제야 몇몇 사람들이 숲을 통과하여 다니기 시작했지만, 남작으로 인해 불구가 되거나 가족을 잃은 사례도 있었기에 두려움은 여전히 온 마을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피치 못할 이유가 없는 이상 누구도 숲에 들어가지 않는 거예요.”
에드윈은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런 곳에 그보다 더한 사람이 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겁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악명 높은 한 사람이요. 이번엔 남작 정도가 아니고 그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존귀한 분이라고 하니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다며 모두들 불안해하며 수군거렸었죠.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얼굴을 보면 조심하라며 용모화까지 돌아다녔다고 하고요. 어린 나이부터 집을 떠나 편력하던 그 사람의 이름이 뭐였는지, 심지어는 그런 존재가 세상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던 사람들 입에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이름이 오르내렸죠. 예전엔 알지도 못했던 그의 또 다른 이름이요.”
그리 유쾌하지도 않은 이야기인 것을, 왜인지 에젤드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점점 깊게 배어들었다.
“그랜웰 씨.”
그녀의 눈빛이 밤의 등불처럼 따뜻했다.
“마차에서 내려 저에게 다가오실 때만 해도, 설마 당신께서 헤즈메리의 그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어느 한미한 귀족 집안의 자제이신 줄만 알았죠. 한데 마차가 헤즈메리 숲으로 들어가기에 가슴이 철렁했고, 성 앞에서 멈추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고, 콜튼 선생님이 당신을 존칭하는 것을 듣고는 어떻게 도망을 칠까 빠르게 궁리하기 시작했어요.”
에드윈은 흥미로운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끝까지 도망가지 않았네요?”
에젤드는 어렴풋이 장난기가 서린 눈빛을 하고 방그레 웃었다.
“발목이 너무 아프기도 했고요.”
농담 섞인 그녀의 말에 에드윈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어 댔다.
그가 웃자 마찬가지로 초승달처럼 가느다래진 눈을 하고 유쾌하게 웃던 에젤드는, 이내 실없는 장난기를 걷어 내고 그날의 진짜 속마음을 진중히 전했다.
“실은 무서웠어요. 도망치다가 들키면 갑자기 사납게 돌변하실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때까지는 소문을 더 믿고 있었으니까요.”
“흐음……. 설마 지금까지도 내가 돌변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니죠?”
아닐 걸 알면서도 무언가 확인이라도 하고픈 듯 너스레의 허울을 빌려 넌지시 묻는 에드윈을 향해, 에젤드는 나긋이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잠시 말을 멈춘 것은 주저함이 아니었다. 선명한 빛을 띤 에젤드의 눈빛이 에드윈의 맑은 눈 속에 파고들었다.
“헤즈메리의 새 주인이 어떤 분인지 사람들이 알면 좋겠습니다.”
에드윈의 눈썹이 움쩍거렸다. 그는 그다음 할 말을 곧바로 찾지 못했다. 분명 슬픔은 아닌데, 그렇다고 마냥 기쁨이라 일컬을 수도 없는 빛을 담은 그 눈에 투명하고 뜨거운 것이 맺히려던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보다 먼저, 작고 희고 차가운 별꽃 같은 것이 그의 속눈썹 끝에 냉큼 내려앉아 매달렸기에.
두 사람은 같은 순간에 고개를 반짝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넓은 구름이 웅게웅게 덮어 가린 짙푸른 하늘 아래로 하얀 눈송이들이 소록소록 흩날려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에젤드의 볼 위에도 처음인 눈이었다. 그녀의 뺨 위로 떨어진 눈송이가 사르르 녹았을 때, 그녀의 어깨가 포르르 떨렸다. 녹녹하고 스산한 바람마저 머리칼을 휙 흩트리고 지나가자 그제야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지는 모양인지 그녀가 몸을 움찔 움츠리고 양팔을 감쌌다. 그 어깨를 내려다본 에드윈의 눈길이 심란해졌다.
“이렇게 쌀쌀해질 줄은 몰랐는데…….”
그는 곧 다급히 허리를 세우고 말했다.
“안되겠어요. 어서 나가는 길을 찾아봅시다. 나가서, 걸칠 만한 따뜻한 옷이 있는지 한번 봐요.”
에드윈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에젤드도 따라 일어서기는 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만이 가득했다.
“나갈 수나 있을까요?”
에드윈은 짧은 망토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 주며 말했다.
“해 봐야죠.”
에젤드가 호의를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 몸을 돌린 그는 일단 호기롭게 발을 옮겼다. 그러다가 불현듯, 무엇이 생각났는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잠깐.”
양손으로 망토 깃을 꼭 쥔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뒤를 따르던 에젤드는 하마터면 그의 등에 코를 부딪힐 뻔하고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렇잖아요.”
그가 말했다.
“출구로만 나가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는 에젤드의 뒤편을 가리켰다.
“되돌아 나가는 방법도 있죠.”
에젤드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이 거대한 미로의 절반을 통과하기까지 몹시나 복잡다단하게 거쳐 온 그 길을.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에드윈을 보고 물었다.
“되돌아가는 것은 가능할까요?”
에드윈이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당신이 도와줘야 해요.”
그의 간절한 눈빛을 본 에젤드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주저하더니, 이내 눈동자를 굴리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기억 속의 길을 되짚고 있는 것 같은데도 답이 영 늦어지자, 에드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 수 있겠어요?”
고개는 들지도 못하고 애꿎은 속입술만 씹어 대며, 에젤드는 머뭇머뭇 답을 꺼냈다.
“쉽지 않을 겁니다. 길이 여간 까다롭지 않아서……. 게다가, 기억을 이런 식으로 짜 맞춰 본 적은 없습니다.”
“아…….”
에드윈은 품었던 희망을 버리듯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잔뜩 풀이 죽은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에젤드의 한 마디 이음말에 에드윈은 기대에 찬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에젤드는 고개를 들었다.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