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의 천이 걷혔다. 옷과 장신구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체온에 중앙 화로의 열기가 더해진 훈훈한 공기가 천막 밖으로 훅 밀려나왔다. 에드윈은 옆에 선 에젤드를 들여보냈다. 에드윈이 덮어 준 망토를 걸치고도 몸을 잔뜩 옹그린 그녀의 머리 위에는 흰눈이 얕게 쌓여 있었다. 역시나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며 뒤따라 들어온 에드윈의 머리도 축축이 젖어 있었다.
두 사람은 미리 약속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찬 숨을 몰아쉬며 곧장 화로 가까이로 다가가 불을 쬐었다. 에젤드는 얼어붙은 손을 화로 위에서 앞뒤로 뒤치기에만 여념이 없었지만, 따뜻한 불길 가까이에 손바닥을 두고서도 에드윈의 눈은 천막 안을 두루 살피기에 바빴다. 대충 몸을 덥히고 적당히 물기를 털어 낸 에드윈은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지 기다란 옷걸이에 걸쳐진 옷가지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리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는 긴 봉 위에 여러 겹으로 겹쳐진 옷들을 하나씩 들추어 살펴보았다. 하나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또 하나를 들었다가 내려놓던 그의 시선이 별안간 발밑에 닿은 것은 한참 후였다.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신발코에 자꾸만 걸리는 어떤 것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감청색의 벨벳 망토. 어느 순간 그의 곁으로 다가와 선 에젤드는 왜인지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의 옆모습을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우선 망토에 묻은 흙을 털어 낸 에드윈은 길게 늘어진 망토의 끝자락부터 옷깃까지를 꼼꼼하고 찬찬하게 살폈다. 긴장이라도 한 듯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여 속으로 말려 들어간 한쪽 옷깃을 끄집어낸 그의 눈동자가 가볍게 떨렸다.
“괜찮으십니까?”
에젤드가 걱정스럽게 묻자 에드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입가에 걸린 것이 미소인지 울먹임인지 통 모를 얼굴을 하고 그가 말했다.
“어머니 거예요.”
에드윈은 망토의 옷깃을 따라 수놓인 넝쿨 모양의 은색 자수를 보여 주었다. 겨우 새끼손가락만 한 길이여서 눈에 쉽게 띄지 않을지라도, 확실히 보통의 것과 구별되도록 기품이 느껴지게 도안된 문양이었다.
순간 비감해진 눈빛으로 자수를 내려다본 에젤드는 이윽고 눈을 들어 에드윈을 보았다. 그리움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일 수밖에 없는 그의 눈빛을 자기 눈 안에 물끄러미 담으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랫동안 못 뵈었지요?”
에드윈은 망토를 만지작만지작하며 무거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가여운 분이에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애써 웃어 보이고는 있으나 자꾸만 찌푸려지는 미간은 어쩌지 못한 채 그가 말했다.
“내가 자라는 모습도 보지 못하셨어요.”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에젤드는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말을 잃고 에드윈도 침묵하자 주변 사람들의 어수선한 음성만이 천막 안을 메웠다. 수선스럽게 움직이는 소리들과는 다르게, 두 사람은 멈춘 바람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미동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에젤드는 그저 애타는 마음이 짙게 배인 망토 위로 쓸쓸한 눈길만을 던졌다. 그것이 그나마라도 찾아낸 그를 위한 최선의 위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무언가 생각해 낸 것이 있는 듯 에드윈을 한 번 쳐다보고는, 살며시 손을 뻗었다. 그녀는 에드윈이 잡고 있는 망토의 한 자락을 보드랍게 매만졌다.
“따뜻해 보입니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입어도 되겠습니까?”
에드윈은 그녀를 보았다. 글썽이는 눈이었지만 입술에는 놀랍도록 빠르게 환한 웃음을 채우고, 그는 지체 없이 망토를 펼쳤다. 그것을 그녀의 어깨에 둘러 감싼 뒤 매무새를 만져 주는 그의 손끝이 한량없이 기뻤다.
두어 발짝 물러나 그녀의 발목까지 드리운 푸른 망토를 보고, 또 불그레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렇게 몇 번이고 그 모습을 보고 또 본 후에, 에드윈은 목구멍에 차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삼켜 누르고는 다정 서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정말 잘 어울려요. 정말로.”
감격에 겨운 에드윈이 울컥대는 마음을 한 번 더 억누르려던 참이었다.
“이 도자기 봤어?”
벅차오르는 감정의 선을 뚝 잘라 버리는 소리에 에드윈과 에젤드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도자기’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던 두 사람은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오자 얼른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머! 이게 뭐야? 이건 우리 마을이잖아?”
“내 말이! 그리고 이것도 봐 봐. 누군지 알아보겠어?”
“우리 아버지잖아! 여기 존도 있고, 한나도 있네! 이렇게 작게 그렸는데 어쩜 이렇게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누군지 다 알아보겠어. 대체 누가 그린 거야?”
“나도 몰라. 맞은편 천막에 있는 기증품이 전부 다 이런 도자기들이야. 왜, 요즘 유행하는 밝은 색감 도자기 있잖아. 거기다 그림도 얼마나 세련됐는지 몰라. 이런 재밌는 것들도 꽤 있고 우아한 것들도 많던데, 어때? 같이 구경 갈래?”
한껏 들뜬 두 여인이 속살속살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 어떤 소리보다 크고 또렷한 소리인 것처럼 듣고 있는 두 사람의 입이 어느새 벌쭉이 벌어져 있었다. 에젤드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엿들은 사람처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차마 다 가리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크게 뜬 두 눈은 에드윈의 두 눈과 환희로운 경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