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창 Sep 01. 2022

주문 불신임 #2

주문 불신임 #2

 살면서 절대 믿지 말아야 할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반짝 바쁜철에 파견 나온 고양이 손도 못 되는 본사 응원단 막내 직원이다.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첫 자식 또래였을 20대 초반의 그 청년은, 싱싱한 인대가 만들어내는 경쾌한 움직임만큼은 아직 동선이 정밀하지 못해 우리•의 발목을 잡았으나, 나머지 늙은 직원들의 눈에 보이는 뼁끼에 비한다면 그저 껄껄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전 휴식시간이 지나고 반년만에 본 이사인지 상무인지 부장인지 하는 사람이 점심밥을 주문하라고 막내에게 명을 하달한다. 한참 스마트폰 속을 헤매던 막내 직원은 우리가 회식 때나 주문하던 읍내 큰 식당에 전화를 걸어, 두루치기에 대구탕과 닭볶음탕 등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을 특식을 주문했는데, 대대손손 몰려드는 외세와 도적 와 그보다 무서운 세금과 탐관오리, 뼈가 갈리는 농사를 마치면 찾아오는 추위에 시달리다 몸이 굽어 죽어간 이나라 농경민 유전자에 흐르는 쌀에 대한 욕망과 원한을 아직 알 길이 없는 이 청년은 그만, 인원수만큼의 공깃밥을 주문하는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밥 먹는 내내 그  사원인지 인턴인지 하는 자식뻘 되는 청년은 간헐적 인신공격을 몸을 움츠리고 버텨내야 했다.

 한국인은 스테이크 두 접시를 비우더라도 반드시 쌀밥을 먹어야 최종 소화액이 분비되는 특수한 내장 구조를 갖고 있다. 쌀밥에 대한 열망은 이나라 국민 대다수가 겪었던 절대적 빈곤의 후유증일 것인데, 어째서 한 두 세대 뒤 까지 끈질기게 입맛으로 유전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공깃밥 하나로 노동자의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이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긴 흰쌀밥은 노동으로 단련된 일꾼들의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샌님들 주먹 크기에 가깝니다. 직경 10.5cm 깊이 6cm의 이 스테인리스 밥그릇은 유신정부가 절미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가난과 군부독재가 모두 걷힌 지금의 자유대한에 어째서 그 배곯는 전통이 여전히 유효한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억울하고 침통하다. 나는 추가 공깃밥 1000원이 대단히 부조리한 것이라고 외치고 싶다. 그 공깃밥의 양은 국사에는 속하지만 곧 세계사로 흡수될 반세기 전 대한민국의 보편적 가난의 산물이었으니, 이제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있어야 할 곳은 식당 보온고가 아닌 박물관이어야 마땅하다. 대학병원이나 국립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국가인증 영양사들이 처방해준 쌀밥 양에 의아해할 것이다. 멜라민제 병원 밥공기에는 흔히 식당에서 보는 스테인리스 밥그릇 1.5배 이상의 쌀밥이 들어간다. 이것이 과연 한국인이 먹어야 마땅한 쌀밥의 양이라면, 2022년의 스테인리스 공깃밥은 의심의 여지없는 인권유린이며 인류에 대한 기만이고, 대단위 장기적 사기행위다.

 청년이여 내 '절대 너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직 세상이 제 흐름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정한다. '아직 믿지 못할 사람'으로.

그러나 이 굴곡진 역사의 밥그릇마저 아울러서 역량을 키워내야만 훌륭한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 본사는 거창하게 서울 강남에 자리했으나 '우리 물류팀'은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인접한 산골에 있었다.

•• 박정희 유신정부는 쌀 생산량 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국민의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대단위 절미 운동을 펼쳤다. 쌀 소비를 줄여 저임금 기조를 유지해 값싼 노동력을 얻어냈고, 마침내 수출경쟁력을 확보했다. 굶주리다 죽어간 이 땅의 국민들은 드디어 일하다 죽을 수 있게 됐다. 이때 함께 장려한 운동이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로 펼친 분식장려운동이다.

________
<공깃밥> 디지털 페인팅 2022

작가의 이전글 주문 불신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