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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Aug 31. 2022

주문 불신임 #1

 살면서 절대 믿지 말아야 할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한여름 점심식사로 냉면을 배달시킨 작업반장이고, 다른 한 부류는 사람 머릿수에만 맞게 음식을 주문한 본사 직원이다. 그중 가장 피해야 할 악질은 여름날 점심식사로 냉면을 배달시키는 작자다.

'적은 내부에 있다.'
지게차 바퀴 아래 아스팔트가 푹푹 패이는 삼복더위, 땀에 젖은 티셔츠는 냄새날 틈 없이 새로운 땀으로 다시 젖고, 복사열로 눈알은 타들어가는 듯 뜨겁다. 참으로 나온 초코파이는 갓난아이 똥처럼 녹아있어 가뜩이나 없는 입맛이 싹 사라진다. 이온음료에 포도당과 소금을 응고한 일약•을 한 알 복용하고 꾸역꾸역 하역작업을 해치운다. 작업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찬물을 끼얹고 나오니 귀한 점심시간 10분이 훌쩍 지나갔다. 더위에 지치고 굼주린 몸뚱이를 터벅터벅 이끌고 휴게실로 들어오니 대갈통 만한 양재기마다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냉면이 일꾼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한 그릇의 냉면은 선의라는 이름의 폭력 그 이상은 못된다. 이 음식을 주문한 작업반장이라는 작자는 아마 냉면이 도착하자마자 랩을 열고 식사를 시작했겠지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적게는 5분에서 많게는 10분 이상의 시간이 지나서야 냉면을 들이켜게 된다. 조리장을 출발하면서부터 불기 시작한 메밀면은 떡이 돼있고, 국물은 맹숭맹숭해져서 중국집에서 내온 검붉은 냉면은 강제로 평양냉면에 가까워진다.
(옆집에도 배달하지 않는 것이 메밀국수다.) 작업반장이라는 작자의 남은 연차와 여름휴가가 코앞인 것도 이 한 그릇의 냉면으로 유추할 수 있다. 나는 그자의 휴식에 동참할 여력이 없다. 내일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몸뚱이를 유지해야 하는데, 폭염을 뚫고 먼 길을 달려온 저 냉면을 견뎌낼 만한 대장 상태를 나로서는 진단하기 힘들다. 의사면허와 선택지가 없는 허기진 일꾼들은 검붉은 칡냉면 한 그릇을 사약처럼 들이켜고, 내일의 안녕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만약 배탈이 난다면 나는 정겨운 나의 집 화장실에서 눈치를 보며 벗어나지 못할 테지만, 작업반장은 적당한 명분으로 때 이른 유급휴가를 즐기게 될 것이다.

 한여름 찬 배달음식은 다년간 일터에서의 섭생을 통해 인증된 내 소화기관 임상실험 데이터와 보건위생 관점에서 일밥으로 최악의 선택지 중 하나다.

• 식염포도당 _ 탈수증을 막기 위해 여름철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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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종이에 수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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