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여남은 번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부화가 치밀기도 하고, 왈칵 눈물이 밀려 나오기도 한 일이다.
나는 제5공화국이 들어선 후 이 땅에 태어나서 배곯는 한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하지는 못했다. 레버가 달린 쌀통에는 잘 도정된 쌀이 가득했고, 쑥잎 뒷면과 색이 같았던 냉장고 안에는 짠지와 두부 따위가 늘 들어 차 있었다. 쌀이 떨어지면 라면을 사 먹었고, 김치가 떨어지면 고추장에 밥을 비볐다. 과소비를 하지 말라기에 외식은 자제했지만, 달걀이나 생선 반찬이 밥상에 오르지 않았던 날은 드물었다.
나의 굶주림은 스스로 끼니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면서 시작됐다. 노동은 어째서인지 내게서 밥 먹을 기회를 번번이 앗아갔다. 공장에서는 출고 마감이 겹치면 목표치를 달성해야 늦은 저녁밥을 먹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모두들 차라리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밥을 먹자는 분위기였는데, 밥도 못 먹고 들어온 남편을 달가워할 부인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중의적 의미로)
얼마 전부터 돈을 많이 번다기에 음식배달일을 시작했는데, 공장에서의 두배 정도를 벌게 되니 굶는 횟수 또한 두배로 늘었다. 배달일이라는 게 당연히 보통의 식사시간에는 주문이 밀려 식사를 못한다. 일반적 식사시간이 끝나면 또 디저트와 커피류 주문이 밀린다. 다시 '한 끼 먹어볼까' 하면 동료 기사들이 먼저 식사를 시작한다. 기회를 엿보던 사이에 이번에는 식당들이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손님을 받는 식당을 찾고 있자면, 뚝 끈긴 콜에 초조해져서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은 일을 잡아버리는데, 그러다 보면 또 '사람들의 식사시간'이 도래한다. 그제야 허둥지둥 배달 간에 위치한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양산빵과 우유 하나를 사들고 엘리베이터나 식당 어귀에서 겨우 입안에 구겨 넣는다. 보통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전 직장의 두배에서 많으면 세배를 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