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시작한 그림들이 삼십여 개 정도 모였다. 오십 점 정도 모이면 작게나마 전시를 열어볼까 한다. 시작은 꽤나 오래전부터 했는데, 맥락과 당위성이 잡히지 않았다. 중언부언하며 둥둥 떠다니는 개념과 그리고자 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몇 해가 갔다. 첫째 산이의 탄생 후부터는 돈을 좇아 시간과 몸을 갈아가며 여느 가장들과 같이 몇 년을 돈벌이에 매진했다. 작년 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오토바이 배달대행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으로 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다행히 작업의 출구가 보였다.
병원에서의 옴짝달싹 못하는 넉 달은 그런대로 의미가 깊었다.
이번 작업에 첫 번째 힌트는 실학자 서유구 선생의 <정조지(鼎俎志)> 에서 얻었다. 그의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사대부로서는 경박하지만, 실학자로서는 사려 깊고 명쾌한 것으로, 당대 민중들의 식생활 전반에 관한 기록을 통해 완성됐다. 두 번째 힌트는 빈센트 반 고흐 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Potato Eaters> 였다. 나는 항상 그 그림을 동경해왔다. 나는 항상 고흐를 사실주의 화가로 분류해왔다. 나는 결국 사실이 진동하는 무엇이 아니면 그리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 둘의 태도를 빌려 내가 생활했던 세계의 '식사'들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면면을 나물과, 생선과, 공산품과, 곡식과 고깃덩어리 들에 서운함과, 속절없음과, 소소함과, 안락함과, 경멸과 희망을 담아 병상에 앉거나 누워서 간단한 수채 재료와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그리고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