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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Sep 27. 2022

<기사식당 돈까스>

일과 밥


 불혹을 넘겼지만 아직 입맛은 어린 시절을 쫓는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막걸리와 위스키를 즐기게 됐고 닭내장탕과 블랙커피도 종종 즐기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짜장면과 동그랑땡, 돈까스, 핫도그, 호떡과 핫바를 좋아한다. 얼마 전 당뇨위험 진단을 받고 먹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그런지 집 밖에 나오면 건강 따위와는 무관한 음식을 찾게 된다.


외부행사나 출장업무, 장례식과 결혼식 참석이 늘어가면서 차를 몰고 타지방으로 길을 나설 때면 화장실 용무나 가벼운 식사, 담배와 커피 따위를 사기 위해 고속도로나 국도변 휴게소에 들르게 된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와 감각을 마비시키는 얼큰한 뽕짝 선율은 더는 찾기 힘들지만, 자판기 우유를 마시거나 반공 전시물을 보면서 운전의 노역이 없던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구운 오징어나 호두과자의 '장소 특정적 호황'에 관한 호기심을 발동시키기도 해 본다. 화장실 입구에 잔뜩 걸려있는 해바라기와 초원을 뛰노는 백마들, 먼 이국의 호숫가 풍경이 담긴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고, 워셔액과 편광선글라스, 핸들커버, 연료첨가제 등을 판매하는 자동차 용품점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 '카펜터스' 음악(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나 CD에 담아서 판매했는데 요즘에는 USB에 담아 판매한다.)을 들으며 잠시 동안 문화적 피폭을 당하기도 한다.


요즘 휴게소 내 상점들은 대부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점령당해서 스낵코너나, 매점(대부분 편의점)에서 지역적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향토기업의 탄산음료나 유명 제과점의 간식 선물세트처럼, 가장의 부재를 증명하고 면죄해줄 증거품들이 사라진 것이다. 식당에서향토음식을 한두 개 끼워 팔고 있는데, 도로를 통해 지나치는 그 고장을 맛으로 음미할만한 수준은 못된다.

나는 도로 상에서 피치 못하게 식사시간을 맞게 되면(사실 즐거운 일이지만) 휴게소에 들러 요즘 유행한다는 소떡소떡이나 어릴 적 코로만 맛봤던 만쥬 따위와 캔커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식곤증이 심한 나로서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식욕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의 전적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모든 싸움이 그렇듯이 예외의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경우에는 화물기사들이 애용하는 기사식당이라는 무제한급 파이터가 그런 존재다.  


 동과 서와 남녘 바다로부터 내륙을 잇는 길들이 교차하는 유서 깊은 휴게소 주차장에는, 사람이 만든 것들과 땅과 바다에서 거둬들인 것들을 가득 싣고 각자의 하역장으로 향하는 트레일러와 카고트럭, 냉동탑차와 1톤 용달차들이 밤낮으로 가득하다. 휴게소 왼편이나 오른편 공중화장실과 향토특산물 매장 사이(일부 고속도로 기사식당)에 있는 기사식당에는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들의 거친 뱃속은 육개장, 순두부찌개, 라면, 돼지두루치기, 우렁된장, 돼지고기김치찌개, 태탕, 돈까스, 잔치국수와 후식으로(셀프서비스) 마시는 자판기 커피로 채워진다.


나는 그곳에 들르면 돈까스를 주문한다.

크림수프를 주는 곳은 거의 사라졌지만, 접시라기보다는 쟁반에 가까운 용기에 담긴  달콤하고 까슬거리는 돈까스를 한 입 베어 물면 잠시나마 어른의 무게를 내려놓는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쟁반에 함께 올려진 풋고추와 생마늘을 보면 순식간에 폭삭 늙어버리지만, 접시에 음식을 남기는 것은 또 불경한 일이라서 아리고 매운 어른의 맛을 씹어 삼키고, 다시 어른이 되어 운전대에 오른다.(아이라면 운전을 해서는 안 되니까 고추와 생마늘을 먹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꼭 기사식당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휴게소 식당에서는 돈까스를 팔고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어른의 입맛이 돼버린 탓인지 일반 휴게소 식당 돈까스는 좀처럼 먹지 않는다.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는 기분을 느끼려 먹는 음식인데 어른 입맛에 맞춰 개량된 것이 아니면 찾지 않는다니 참으로 모순된 입맛이다.

추억하지만 돌아갈 수 없고, 힘들다고 도로에 멈춰 설 수도 없다. 속절없는 일이다.


부디 저 돈까스를 다 먹고 싱싱한 소년소녀생기로, 고추와 마늘의 매운 향기를 머금고 각자의 하역장과 차고지와 집으로.

"모두 안전운행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마지막 밥을 먹는 그 순간이 도래하겠지만, 적어도 휴게소 돈까스는 아니기를 바란다.


<막 밥>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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