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아직 작가 근처에도 못 가지만...)글을 쓰면서 과거와 현재에 독서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보다는텔레비전이나 만화책 보기를 즐겼다. 그나마 메칸더브이나 스머프 같은 만화영화도 좋아했지만 다큐멘터리나 시사프로그램도 즐겨봤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몇 번이고 독파했고, 블루 같은 순정만화도 즐겼지만 '쥐'같은 작품들도 더러 찾아봤다.
그 시절에는 만화방이나 책 대여점이 동네마다 두세 개씩 있던 터라 버스비 정도로 책을 빌리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시립도서관에 가는 시간과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만화방 주인이 끓여주던 라면 수십 그릇을 먹고 책장 가득한 만화책을 다 읽어 갈 때쯤 세로로 읽어야 하는 김용의 무협지들과 검궁인 사마달 등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작가들의 최신 무협지를 읽기 시작했다. 수십 편의 무협지를 읽다 보니 주인공의 추락과 비상을 예측할 수 있었고, 배신자와 조력자의 면모를 포함한 전반적인 소설의 흐름과 소위 말하는 플롯과 클리셰를 학습할 수 있었다.
레일이 달려있는 책장을 밀고 당기면 '개미'나 '람세스'같은 책도 있었고, '상실의 시대'나 '광수생각', '앵무새 죽이기', 삼김을 소재로 한 삼국지 무협물 같은 책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절반 정도만 읽고 반납했다.
'해리포터' 열풍이 불 즈음 '비밀의 방'까지 읽고 수험생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더는 소설을읽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입시로부터의 해방감을 즐기느라 교재 이외에는 별다른 책을 읽지 않았다. 가끔 고향으로 가는 길에 버스 터미널에서 집어 든 '냉정과 열정 사이'나 '오자히르' 같은 책들을 읽기는 했다. 여기까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독서습관 전부라고 봐도 되는데, 무협지를 포함한다면 다행스럽게도 월 한 권 가량의 책을 읽은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일과 전공에 관련된 책들 외에는 그냥저냥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도 하고, 오지 않을 휴식을 보상받기 위해 인문서적이나 소설책을 마냥 사두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첫째가 태어난 해에 인터넷 쇼핑으로 문학전집과 유명 산문집과 추리소설을 포함 300여 권의 전자책이 패키지로 들어있는 전자책 리더기를 하나 장만했다.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니 단말 기 안에 책들은 아직 43년 동안 열람이 가능하다.(어릴 적 책장에 있던 소공자, 올리버 트위스트, 작은아씨들, 철가면 등의 세계문학전집이 어째서인지 우울하고 칙칙해서 손이 안 갔다. '언제 다 읽지'하는 압박감도 싫었다. 전자책이라면 부피도 작고 일단 신기한 물건이라서 아이가 흥미를 갖겠거니 하고 구입했는데, 결국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읍내에 있는 도서관에는 아이들과 함께 월 3회 정도 가는데 아이들은 그곳에서 뛰놀고 책을 본다.그곳에서아이들이 읽을 책과 아내와 내가 볼 책을 대출해서 보는데, 우리 가족의 월 독서량은 대출확인서 기준상 월 30권을 조금 밑돈다. 30권의 책 중에 아이들의 동화나 그림책이 절반이고 나와 아내의 책이 절반인데, 모든 책을 끝까지 읽는 경우는 드물지만 마음에 드는 책은 재차 대여해서라도 끝까지 읽는 편이다.
읍내에는 두 곳의 서점이 있다. 작년 교통사고 이후로 벌이가 좋지 못해 문화누리카드를 발급받게 되어 월 2회 정도 들러 작년 대비 2배 정도의 책을 구매한다. 아이들은 공룡백과나 마인크래프트 전략집, '어린왕자',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들을 사고, 나는 '페스트' 같은 옛날 책이나 '파칭코', '하얼빈' 같은 요즘 책도 산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의 독서 습관과 코로나로 인한 반 강제적 환경 때문에 책과 친해졌다. 나는 사고 후로 거동이 불편해져 그나마 소일할 수 있는 책을 전보다는 더 보고 있다. 밤에는 식탁이나 침대맡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소설이나 에세이 등을 보는데 작업 책상에서는 읽지 않는다. 이것 또한 하나의 원칙인데 글 쓰지 않을 때에는 연필을 들거나 공상하는 행동 이외에 어떤 것도 책상에서는 하지 않고 있다.
심심해서 책을 보고 심심해서 글을 쓴다가 요즘에 내 상황에 가깝다. 물론 써야 할 이유야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구체적이고 절절한 내막이 없지는 않지만, 시간이 있어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물리적 사실이다. 생각은 구체적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확실히 물리적 여건이 충족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분명 작가란 시간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읽는 사람에 일단 만족한다면 주말에 도서관이나 서점, 적어도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고를 시간과 출퇴근 짬짬이 몇 장 이리도 읽을 시간을 낸다면, 한 달에 책 몇 권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글을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양평어린이도서관 _ 아이들이 책과 친해진 계기는 1층에 있던 놀이시설 이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없어졌다.
읍내 서점은 한적하고 깔끔해서 아이들과 즐겨찾는다.
마트는 내 냉장고, 도서관은 내 책장 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부자가 된 기분도 들고 수납공간 걱정도 덜 수 있다.
주로 침대맡에서 책을 읽는다.
요즘 전자책은 시력보호를 위해 노란 불빛이 나온다고 합니다... 여보님♡¡
지난 글들에 이어... 오늘 마지막 택배가 도착했다. 몽당연필 홀더와 눈여겨보던 녹색 연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