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에 관한 예찬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뭔가를 쓸 일이 있으면 펜을 선호한다. 아버지 유품인 파커 만년필은 저가형 모델이라 굵기도 얇고 촉도 엉망이어서 썩 훌륭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럭저럭 쓸만하다. 그동안의 경험담과 생각들을 수기 형식으로 쓰다가 문득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노트에 만년필로 계획을 써봤다.
나는 썩 훌륭한 미술가도, 문장가도 아니지만 그런대로 글을 밀고 나갈 최소한의 문장력은 갖추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데, 뭐 아니라고 해도 쓸 계획이다. 이렇다 할 경력과 실력은 없지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한솥밥 먹은 경험들을 글로 써야만 할 적지 않은 부채감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