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창 Sep 28. 2022

우완(右腕)

소설 습작


1.

 그해 겨울은 사나워서 해는 마찰하며 늦게 떠올랐고, 때문에 모든 골목의 모퉁이는 얼어붙어 검게 빛났다.


 정오 무렵 태양에 34번지 슬레이트 지붕에 쌓인 눈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얼어붙은 물받이를 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눈 뭉치는 녹아 흐르다가 멀리 못 가고 다시 얼어서 검게 엉켰다.


 신문을 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월요일 아침 형택을 태운 85cc 오토바이는 34번지 처마 밑에서 바퀴를 헛돌리다 고꾸라졌다. 오토바이 배기구에서 나온 매연과 타이어가 마찰하며 생긴 고무 타는 냄새의 수증기가 넘어진 형택의 머리 위를 덮었다.

아직 몸이 무른 열여섯의 형택은 욱신거리는 무릎을 조물 거리며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85cc 오토바이는  발판 덕에 넘어졌지만 전복되지 않았고 플라스틱 카울은 다행히 깨진 곳이 없었다. 눈 위에 뿌려진 제설용 모래와 연탄재 위로 글게 말린 신문들이 미끄러져 흩어졌다. 형택은 제 옷에 묻은 것들을 털기도 전에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고 신문을 손으로 털며 주워 담았다.


 34번지 안쪽에는 2층 주택이 많았다. 비슷하지만 제법 공들여 지어진 벽돌 주택 박공지붕들 위에는 짙은 파란색과 주황색 페인트로 두껍게 칠을 한 시멘트 기와가 씌워져 있었다. 마당은 넓고 담 들은 높았는데,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난간에는 철을 굽히고 꼬아서 만든 장식이 용접돼 있었다. 형택은 이제 어지간한 2층 집에는 한 번의 투구로 신문을 던져 넣을 수 있었지만, 34번지 일대 2층 주택 세 집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형택이 힘껏 쏘아 올린 신문이 날아가다가 조금이라도 펴지면 난간 장식에 막혀 아래로 떨어지기 십상이었는데, 난간 아래는 담 너머에 있었기에 신문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형택은 85cc 오토바이 앞에 붙어있는 바구니와 짐올려붙인 노랑 플라스틱 바구니에 아침까지 배달을 마쳐야만 하는 할당량의 신문 외에 스무 개 정도 여분의 신문을 더 싣고 다녔는데, 가끔 동전 두 개를 내고 신문을 사는 57번지 슈퍼 사장님처럼 오토바이를 세워 신문을 사거나, 새롭게 영업을 해야 할 곳에 무상으로 주는데 절반 정도가 소비됐고, 나머지는 2층이나 옥탑에 신문을 던지다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형택의 세 번째 투구, 신문은 34-2번지 2층 난간과 계단바닥 틈새로 빨려 들어가 현관에 명중했다. 우쭐해진 형택은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방한대를 고쳐 쓰고 겨울용 핸들 덮개 안에 스로틀을 조심히 감아 35번지 방향으로 달리던 형택은 얼마 못가 브레이크를 잡았다.


35번지 비탈길은 좌우로 여덟 채의 집들이 시멘트로 포장된 비탈 골목을 나눠 쓰고 있었는데, 어느 집 계량기가 터졌는지 비탈길 전체가 윤이 나게 얼어 있었다. 녹즙 배달 가방이 걸려있는 파란 대문 집은 지척에 있었으나, 요 며칠 브레이크를 도왔던 형택의 운동화 밑창은 골이 얕고 희미해서 걸음으로도 35번지 언덕을 오르지 못했다.

 이튿날에도 얼음은 녹지 않았다.


 보급소로 출근한 지 열흘째, 검은 새벽을 걸어온 형택은 오전 4시에 출근해서 보급소 선배들과 신문 사이에 슈퍼마켓 전단지를 넣었다. 전단 작업을 마무리하고 오토바이에 신문을 싣고 있던 형택을 보급소장이 불러들였다.

  "너 이 새끼 35번지 파란 대문 집에 사흘이나 배달을 거르면 어쩌자는 거야, 일이 장난인 줄 알아!"

소장의 목소리는 높고 떨렸는데 얼굴 한쪽에만 옅은 미소가 씰룩거렸다.

"어쩔 거야 이 씨팔!"

보급소장은 금방이라도 후려칠듯한 몸짓을 하며

택을 채근했다.

"길이 전부 얼어서 올라갈 수 없었어요."

형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꾸했다.

소장은 이후로도 몇 분 동안 뭐라고 속 씨부렁 거렸지만 긴장한 형택은 다 알아듣지 못했다.

 

 35번지 파란 대문 집 신문구독이 취소되어 남은 구독료를 토해내야 하니까, 지금까지 일당을 못주는 건 물론이고 거기에 2만 원을 더 붙여서 물어내야 계산이 맞으니, 일은 관두고 당장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며 소장은 고함을 쳤다.


2.

 형택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집의 기초부터 문틀 부엌 상. 하부장 등을 만들고 깎았는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오전 5시까지 채비를 마치고 동과 서와 남쪽에 있는 일터로 근했다.


 형택은 5시가 조금 못돼 집으로 돌아왔다.

형택은 아버지에게 보급소에서의 일을 말했고, 형택의 아버지는 말없이 아들의 아침밥을 차려냈다.

"더 자고 학교 늦지 않게 가거라, 보급소에는 내가 변상 하마." 형택의 아버지는 쇳소리가 나는 볼링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서며 형택에게 말했다.


 형택의 아버지는 6.25 사변 두 달 전에 태어났다.

육 남매 중 넷째로 아래로는 누이가 둘, 위로는 누이가 하나 형이 둘이었다. 그의 큰형은 집안에 기둥답게 듬직하고 총명해서 대학을 마치고 큰 제철소에 관리직으로 취직했는데, 철판을 만드는 기계를 점검하려고 모터 가까이 귀를 대고 소리를 듣다가  철모를 뚫고 들어온 전기에 감전돼 죽었다. 회사에서는 한두 해치 생활비 정도에 돈을 지급하고, 형택의 아버지를 특별 채용하는 조건으로 보상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형택의 아버지는 혈압이 높아 채용이 무산됐다. 월남에서 맞은 고엽제 탓에 형택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크고 작은 질환을 앓았으나, 그저 타고난 것이라 여겼다. 형택의 안방 서랍에는 파란 도깨비가 그려진 앨범이 있었는데, 그 앨범 속에는 죽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거나 익살스러운 표정과 포즈로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흑백사진이 들어 있었다. 형택의 아버지는 사진첩 속에서 앞발을 치켜든 백마가 그려진 마크를 팔에 달고 있었다. 주위에는 돈 벌러 월남에 다녀왔다고 말했지만, 실은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질을 하다가 찍혀서 끌려간 거라고 형택은 큰 고모에게 전해 들었다. 한 사람의 총격으로 형택의 아버지가 반대하던 정권은 쓰러졌지만, 이후 정권도 그 앞과 태생과 생애가 다르지 않았기에 여전히 공안 형사들은 형택의 아버지가 살던 그 누이의 집 앞을 감시했다고 그 집에 주인이었던 큰고모는 어린 형택을 무릎에 앉혀두고 별일 아닌 옛날이야기처럼  말했었다.

교육대학 2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데모와 파병으로 휴학했던 형택의 아버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제철소 취직이 무산된 후 형택의 아버지는 그의 작은형을 따라 일을 다니며 목수일을 익혔다. 형택의 아버지는 가는귀가 먹었는데 현장에서의 망치소리와 투이호아에서 울렸던 포격과 자신의 소총 소리 때문이었다. 형택의 목소리가 작으면 형택의 아버지는 목소리를 크게 내며 되물었다. 그래서인지 형택은 가끔 아버지가 무섭게 느껴졌다.


 형택의 아버지가 신문보급소 시문을 살짝 들어 올려 옆으로 열었다. 배달원들은 모두 각자의 구역으로 산개한 후라 소장만이 혼자 철제 책상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형택의 아버지는 소리가 나는 볼링 가방을 열어 지퍼가 달린 지갑에서 오천 원권 두장과 만 원권  장을 꺼내 급소장에게 건네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님도 잘 아시다시피 이 시대에 신용보다 중요한 게 또 없지 않습니까......" 

보급소장은 신문에서 주워들은 문자를 써가며 훈계하듯 형택의 죄를 나열하고 또 사(赦)하였으나 형택의 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다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소장의 얼굴에 묻은 옅은 웃음으로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임을 알았다.

 "그럼 번창하십시오 거듭 사과드립니다."

형택의 아버지는 보급소 시문을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닫고 나와 버스 종점을 향해  쇳소리를 내며 걸었다. 종점에는 초로의 남자들이 가방도 없이 서있었고 첫차는 아직 시동을 걸지 않았다.


3.

 형택의 아버지가 차린 밥상에는 지난가을 형택과 고향 강가에서 잡아온 민물게로 만든 조림과 설익은 김장김치, 달걀프라이 두 개와 미음처럼 끓여낸 눌은밥이 올랐다. 식탁 옆에는 형택이 점시에 먹을 보온 도시락통과 캔참치, 김 봉지가 있었다.

알람시계가 울리자 형택은 소스라치듯 이브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눌은밥을 보며 형택은 새벽 보급소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일을 었다는 설움을 느낄만한 나이는 아닌지라, 약간의 서운한 감정은 있었지만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욕을 먹었다는 분함과 얼어붙은 비탈길에 대한 원망이 치밀어 올랐다. 형택은 반찬 덮개를 열고  잔에 물을 따랐다. 물 한잔을 마시니 형택은 보급소 월급으로 사려했던 일제 워크맨과 아침마다 함께 달리던 85cc 오토바이 생각에 속이 더 쓰려왔다.

 

 형택은 숟가락을 잡았지만 눌은밥을 퍼올릴 수 없었다. 친구들과 온종일 캐치볼을 했던 지난여름에 느꼈던 것과 같은 통증이 신문을 쏘아 올리던 형택의 오른팔에 계절을 건너 찾아왔다. 통증은 어깨에서 출발해 등과 가슴 팔꿈치로 퍼지다가 눈꺼풀 아래로 돌아왔다. 형택은 통증에 눈을 찌푸리며 어깨를 만지다가, 왼손으로 숟가락을 옮겨 잡고 눌은밥을 떠 넘기고 덜 익은 짠지를 긁어먹었다. 어색한 왼손 숟가락질을 보며 형택은 어려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다가 큰 고모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형택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해 게 조림을 집으며 아침에 전단을 넣던 스포츠신문에서 읽은 "왼손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려와라"라는 문구를 중얼거렸다. 


 그 해 겨울은 길었는데 워크맨이 없던 형택은 심야FM을 들을 수 없었다.

프로야구 개막은 두 달도 더 남아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기사식당 돈까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