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라는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 유한한 인생 가운데, 우리가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찢기고 구겨지는, 곧잘 물에 젖어 풀어져 버리는 종이와도 같습니다. 이렇게도 쓸 수도 있고 저렇게도 쓸 수도 있고 이 종이가 망가지면 저 종이로 대체하면 되는, 용도에 맞게 잘리기도 하고 구겨지기도 하면서, 결국은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아궁이의 불쏘시개가 되어 버릴 운명이죠.
주위의 종이들이 한 장 한 장 그렇게 구겨져서 아궁이로 옮겨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솟아났어요.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난 그냥 이런 운명이구나.’, ‘나는 어디에도 있는, 대체 가능한, 흔한 종이 한 장일 뿐이구나.’ 너무나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앞에, 실의와 낙담의 파도가 저를 휩쓸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던 나날, 하루하루 살아가며 그날의 즐거움을 내 삶의 목적으로 삼던 어느 날, 세계를 여행하던 유명한 연예인이 제가 사는 동네에 찾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저렇게 빛나는 사람도 있구나.’, ‘정말 눈부시다. 말 그대로 나랑은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
모두의 환호를 받는 빛난 연애인의 모습과 비슷한 처지의 종이들과 함께 구겨진 채 방치되어 있는 나의 모습. 초라한 저의 모습과 달리 빛나던 연예인의 모습은, 오히려 저의 수치를 드러내는 밝은 조명이 되어 저를 부끄럽게 했어요.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지 뭐.”
수치심에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자리를 뜨려던 찰나,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글쎄, 대뜸 그 연예인이 다가와, 저의 지면 위에 자신의 사인을 적어둔 거예요!
그 즉시, 제 삶은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더는 저를 연습장이나, 색종이, 창문 닦는 신문지와 같이 여기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연예인의 사인이 적혀진 저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가장 귀한 액자에 넣어놓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보이도록, 가장 높고 환한 조명 아래로 옮겨 놓았죠. 많은 사람이 저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저의 가치는 그날로 달라졌어요.
한낱 종이에 불과했던, 제 가치가 그 연예인의 가치와 같은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에요!
그중에서 가장 기뻤던 사실은, 제가 닳고 닳아 불쏘시개가 될 걱정은 영원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어요. 떨쳐낼 수 없는 운명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저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 사람들의 가치는 쓰임이 다를 뿐, 모두가 똑같은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안에 새겨진 내용에 따라 나의 가치가 영원한 것으로 바뀔 수도 있겠구나.”
내 가슴속에 심어진 당신의 사랑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당신의 손으로 직접 새겨놓은 당신의 이름이, 희망 없던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내게 새겨진 당신의 이름이 흐려지지 않기를, 그리고 나 역시 당신의 마음에 나의 이름을 새겨드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