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

by 마타

쨍한 풍경의 강변이 바라보이는 여름날의 카페,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잔잔한 클래식이 기분을 산뜻하게 해주는 와중에 한 커플의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래 너 말 잘했어! 너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


“넌 끝까지 너만 생각하는구나? 내가 내 입으로 하나하나 구질구질하게 말 해야겠어?! 나 정말 수치스러워!!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줬다면! 넌 날 이해했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너가 아니야! 오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따지지 말고 너가 원하는 걸 말하라니까? 그럼 난 다 해줄 수 있어! 그런데 넌 너가 기분 나쁜 게 먼저지? 대화를 통해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전혀 없잖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단지 몇 마디 들었을 뿐인데도 얼굴이 확 구겨지는 싸움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여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는 남자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고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환장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저렇게까지 감정을 부딪치며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향한 애정이 분명하다는 뜻이겠고 또 상대를 향한 열심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비록 그 방향성은 많이 다른 것 같았지만.


다행히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품은 감정은 동일한 종류의 것임이 확실해 보였다. 사랑하지 않고서야 억울하고 환장하는 와중에, 서로를 향한 시선 속, 안타까움을 담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같은 마음으로 만나는 두 사람이 복잡하게 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잘 풀어 나갈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평생을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오던 인간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을 온전히 받는 것 또한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작업을 하던 노트북을 잠시 덮어두고 그이와 연애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아니 내가 도대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데? 이게 나를 위한 거라고 지금 말하는 거야 당신?”


“그럼! 나는 널 위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걸 해준 건데? 내가 너한테 무슨 나쁜 짓을 했어?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니…. 누가 이런 거 해달래? 도대체 해달라고 하지도 않은 걸 해놓고 왜 생색 내는 거야?? 생색낼 거면 처음부터 해주지 말라니까?!”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경치 좋은 카페에서 쉬는 것을 생각하여 ‘어디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갈래?’라고 말하면, 그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선물하고 해발 1,000m급의 등산로로 나를 데리고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놓고 내 반응이 좋지 않으면 어째서 자신은 좋은 것만 해주었는데 화만 내는 거냐며 풀이 죽던 사람.

처음에는 그조차도 귀여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 콩깍지가 벗겨지고, 또 내 여유가 사라질 때는 종종 그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게 무언가를 권유하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 난 그의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닌가 하며 섭섭함에 상처받았으니.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어지간히 귀찮은 여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라며 듣고 경험하는 것이 다 달라, 각자의 개성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개성이 있는 두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고 생각을 맞추어가며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 경의로운 아름다움은, 인간의 한계 때문에, 때로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했다.


사람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주게 되어 있었다. 흔히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고 하는 녀석인데. 쉽게 예를 들면, 나는 화려한 장미를 받고 싶었지만, 상대는 붉은색의 튤립을 선물해 주고 만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받지 못한 장미가 아른거려서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날 사랑하지 않는다며 상처 받고, 상대는 그의 마음을 예쁘게 가꾸어 튤립이라는 꽃다발로 건네주었는데, 정작 내 반응이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꽃 선물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


이 비극이 잔혹한 것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보단, 서로를 향한 사랑이 불타는 뜨거운 커플들에게 더욱 잘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꽃 선물 자체를 하지 않을 텐데, 서로 상처받을 일이 무엇이겠는가?


나 역시 이 함정에 빠져, 사랑받지 못한다는 실망감에 사로잡힌 탓에 그와의 관계에서 더는 기대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언제나 나만 더 절박한 것 같았고, 실망이 크니 상처도 커서 그에 대한 감정 자체를 거부하게 됐다.


그렇게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에서, 냉랭하던 우리 사이를 회복시킨 것은 아주 사소한 깨달음이었다.


장미를 받지 못한 설움에 단단히 삐진 내가 꽃집 앞을 지나며 ‘어머 저 장미 참 예쁘다.’라는 말을 했다는 것 같았다. 내가 ‘같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스쳐 지나가듯이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새겨들었던 그는, 이번에도 나에게 장미꽃을 사 주는 것이 아니라, 무더운 여름날, 나를 장미 축제에 데리고 갔다.


이 푹푹 찌는 여름날 웬 야외 활동이냐며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에게 내 핸드백을 던져 놓고선 인스타에 올릴 사진이나 좀 찍어보라고 짜증을 냈다.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내가 좋아하는 장미 앞에서도 내 기분을 망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재능이야.’


그렇게 그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상태로 꽃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나는, 내 사진을 찍어주던 그의 모습을 보곤 곧 울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나보다 더 더위를 잘 타는 그가, 여전히 내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도 모르면서,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짐을 양손 가득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다는 내색도 없이 꽃을 구경하는 나의 모습을 놓칠세라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로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선에는 이 아름다운 꽃밭도, 화려한 나비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 가득 들어 있어 불쾌한 습도와 괴로운 더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사랑은 언제나 최선이었고 또 최고였다. 그것이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내가 가장 기뻐하는 그 마음 그대로였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그에게 요구하기를 멈췄다. 그리고 잠잠히 그가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그가 하는 일은 여전히 나랑 맞지 않았고 때로는 나를 괴롭게까지 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 나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달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때론 너무나 쉽게 본질적인 것을 잊어버리곤 하는 것 같다.


물론 그가 내게 준 꽃다발이 내가 좋아하는 장미였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튤립이면 어떻고 프리지아면 어떻단 말인가? 그 꽃은 일주일도 못 가 시들 것이고, 내 기쁨도 거기까지겠지만. 나를 향한 그의 진실한 사랑만은 나의 평생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남들이 다 해본다는 해외여행도 못 가봤고 누구는 기념일마다 받는다는 명품 가방도 한 번 못 받아 봤지만, 나는 내가 그 어떤 여자들보다도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장미보다는 튤립을 사 오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다.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이전보다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한참을 싸우던 커플들을 바라보니, 그들은 서로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책상 아래에선 여전히 손을 맞잡고 있었다. 분명 저들이라면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사랑만 확실하다면, 서로를 기쁘게 했던 그 깨끗한 중심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이 걸려도, 어떤 어려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도 분명 이겨내지 못 할 일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큰 기쁨이 되는데 장미 한 송이 받지 못했다고 서로를 포기하는 사람은 바보였다. 눈앞의 커플들은, 행복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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