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정의가 과연 옳음일까?
옛날옛적 한 시골 마을에 세 친구가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작은 마을에서 함께 자란 그들은 사실상 가족과도 같아, 마치 형제처럼 자랐다. 그들은 어딜 가든 늘 함께였고 그들의 우정은 온 마을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흐뭇하게 하는, 보기 좋은 시골 삼총사. 그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 그들이 각자의 가정을 이뤄 다시 아이들을 낳은 후에도 그들의 우정은 대를 이어서 지속되었다.
그러나 비극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 그렇게나 사이가 좋던 세 친구는 하루아침에 왕 앞에 서서 서로를 고발하고 있었다.
“폐하!! 저 녀석은 어린 아이 3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입니다!! 당장 엄히 벌해 주셔야 합니다!!”
“그만그만!! 자식을 잃은 그 마음은 알겠으나, 폐하께선 아직 이 사건에 대해 듣지 못하셨네. 조금 진정하라”
왕의 앞에 서자마자 울분을 토하는 한 친구의 말에 관료들은 그를 진정시키곤 그 옆에 묶여서 끌려온 죄인을 바라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채로 눈물을 흘리며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있는 죄인.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세 친구 중 한 친구가 밭에서 일을 마치고 술을 한잔 마신 뒤에 마차를 몰고 돌아오던 중이었단다. 그러다 갑자기 말이 날뛰었는데, 술기운에 미처 말을 통제하지 못한 그는 마침 길을 지나던 어린아이 3명을 치어 죽게 했고 그 치인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함께 어울리던 세 친구의 아들들이었다는 이야기였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는, 그토록 정겹던 친구들의 우정을 파괴하여, 원수로서, 그들로 하여금 법정에서 마주하게 만들었고 아들을 잃은 친구들은 모두 참척의 슬픔에 흐느끼고 있었다.
“폐하!! 이 사건은 목격자도 분명하고 과실도 분명합니다. 제가 이 자와 함께 밭에서 일했던 일꾼들로부터 이야기도 다 들어놓았습니다. 저 흉악한 죄인도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 전에 밭에서 술을 마셨다는 증언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마차를 몰다가 지 자식까지 쳐 죽인 극악한 죄인이 아닙니까? 극형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마차를 운행하기 전에 술을 마셨다는 저자의 고발이 과연 다 사실인가?”
“...”
“죄인은 폐하의 말에 답하라!”
“...그렇습니다. 폐하.”
그의 말에 법정은 술렁였다. 더는 법리를 다툴 것이 없을 정도로 명백한 범죄 행위와 자백이었으니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너무나 명백하고 범죄 사실도 분명한 사건에 방청객들 모두가 이 재판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폐하 들으셨다시피 저자의 범죄가 명명백백합니다. 이번 일은 단순한 경범죄가 아닌, 어린아이 3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 아닙니까?! 어지신 폐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 가운데서 이런 미개한 종류의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하사 범죄 사실을 공표하시어 저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백성들에게 본을 보이심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한순간에 끔찍한 사고로 자식을 잃은 한 친구는 고발을 멈추지 않으며 계속해서 울분을 토했다. 자녀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거기에 그의 의견은 단순히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는 옳은 말 그 자체였다.
왕이 예상대로의 판결을 내려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는 상황. 그러나 왕은 판결을 잠시 유보하고 똑같이 아들을 잃었음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다른 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대도 똑같은 사고로 아들을 잃지 않았나? 어째서 그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폐하 미천한 저에게도 발언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저도 한순간에 아들을 잃은 슬픔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게 식어버린 저의 아들을 수습하고 왔던 저이지만, 아직도 집에 돌아가면 아들이 저를 반갑게 맞아주며 제 곁에서 재잘거려 줄 것만 같습니다. 분명 아들의 시체를 봤음에도 여전히 아들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자녀를 잃은 아비의 비통한 심정을 말하는 가운데 재판정엔 엄숙한 침묵이 맴돌았고 오직 그의 말소리만이 메아리쳤다.
“또한 제 친구의 범죄 사실이 모두 사실인 것은, 저도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는 분명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그가 평소에 몰던 마차는 아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흉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한 제가 발견했던 것은, 범죄 현장에 남아 있던 어떤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라, 그저 비극적인 참사 가운데 아이를 잃고 울부짖는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방청석이 술렁였다.
“거기에는 어떤 흉악한 악인도 없었습니다.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러 어찌할 줄을 몰라 탄식하며 울부짖는 한 죄인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는 한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의 아이와 또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을 잃어버린 한 아버지였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제 친구가 잘못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물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만, 저는 저 친구보다 제가 낫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저 역시 언제든지 그와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고 하루하루 보호하시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그대는 세상을 떠난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보단, 친구를 선택하겠다는 것인가?”
“...제 아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가슴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고통으로 하염없이 울고 있지만, 제 친구는 여전히 살아서 숨을 쉬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의 남겨진 가족들이 그에게 희망을 걸지 않습니까? 제가 어찌 하루아침에 아들과 함께 친구도 잃어야 하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은 것은 저자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저 친구의 진심을 압니다. 언제나 아이들과 가정을 사랑했고 친구들을 선대 하던 자입니다. 저는 도저히 저 친구보다 제 마음이 깨끗하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저 친구의 처지였다면 저라고 다를 것 같진 않습니다. 폐하, 만약 저 친구가 이대로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면 어떤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어떤 정상참작도 되지 않는다면, 음주 후 탈것을 주행했고 존속 살인에 2명의 아이를 죽인 죄인이다. 그렇다면 사형, 혹은 적어도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겠지.”
“그렇다면 저 친구의 가정은 슬픔에 물들 것이고 저 친구의 남겨진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고아가 되겠군요. 저 친구의 부모님은 평생을 키워온 아들을 잃을 것이고 부인은 하루아침에 아들과 남편을 모두 잃은 과부가 될 것입니다. 어찌 슬픔을 배가시켜야만 하겠습니까. 그것이 과연 옳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랑 없는 정의를 핑계로 이 슬픔을 더욱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이 슬픔을 전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옳음을 무기로 또 다른 죽음을 가져오고 싶지 않습니다. 저 친구는 이 중에서 가장 크게 반성하고 후회하며 뉘우치고 있을 사람입니다. 아마 이 사건 이후로는 다시는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겠죠. 저는 단장지애의 비통함을 눌러 담고 공의로운 폐하께 감히 선처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