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글 쓰기 (8/8)
부모님은 캄캄한 밤에 아이가 보고 싶었단다. 딸 일곱을 두고 본 아들이었으니 귀했을 것이다. 문제는 난리가 나서 밤에 불을 켤 수가 없었다. 폭격에 대비해서 등화관제가 실시된 탓이었다. 장롱 안에다 등불을 켜고 아이를 비쳐보는데, 손위 누이가 자기 그림자에 놀래서 야단이 났더란다. 내 기억에 없으니 리즈 시절이라 할 것도 없다.
대학생이 되어 대접으로 막걸리를 들이부으며 호연지기를 뽑내던 때도 있었다. 그때가 리즈 시절이었을까? 말이 안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색시와 겨우 솜털이 가신 신랑이 살림을 차리고 토닥거리며 정이 들었다. 아이 셋을 두고 열심히 살았다. 이 때가 나의 리즈 시절이었을까? 글쎄, 나쁘진 않았지만 리즈 시절이라 할 것은 없다.
4, 50십대는 좋았다. 쌓아온 공력이 꽃을 피우는 때가 대개 이 시기이다. 아이들 품 안에 있고 가정적으로 안정되었다. 직장에서도 이력이 나서 호기를 부리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리즈 시절이라고 할 것은 없다.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30대 말이었다. "은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상태"라는 글을 읽었다. 그 말은 나에게 새로운 미래를 그리게 해 주었다. 그 뒤, 나이들어 지나치게 궁색하지 않을 준비를 하는데 15년쯤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직장을 떠났다.
요즘 나는 편안하다. 주로 책을 읽고, 나머지 시간에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한다.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고, 간혹 몹시 더운 여름날 빙수 심부름도 한다. 이번 토요일에는 손자들과 영화관에서 "귀멸의 칼날"을 보기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요즘이 나의 리즈 시절인 듯 하다. 매일이 리즈 시절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는 나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