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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뻬릴 Jul 23. 2021

[일본 문구점] 후쿠오카 오호리코엔역 - 린데 까또나주

취향을 넘어 마음을 건네려

후쿠오카시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언젠가 친구와의 대화 중 스치듯 언급됐을 지방 광역시 같은 느낌이다. 여행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비행기를 골랐든, 배를 선택했든 간에 처음 현지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도시 곳곳에 한국어로 표기된 표지판이 보이고 한국인 관광객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숙소의 모양이나 기차역의 분위기도 어쩐지 친숙하게 다가온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 이야기하자니 낯선 진술이지만, 적어도 2020년 초까지의 후쿠오카시는 그랬다.


후쿠오카시의 특징 중 하나는 도심 내부에 공원이 많다는 것이다. 후쿠오카시를 관통하는 여러 강줄기들과 곳곳에 배치된 공원 녹지, 고등어로 유명한 북쪽 바다는 후쿠오카의 풍경을 인구 백오십만짜리 대도시의 그것이 아닌 거대한 정원으로 보이게 한다. 그중에서도 후쿠오카 성이 위치한 오호리 공원과 마이즈루 공원은 특히 크기가 크고 아름답다. 파란 연못에는 오리들이 햇빛을 즐기고, 후쿠오카 성터와 시립미술관, 문화회관에는 시민들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후쿠오카시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점 중 하나일 "린데 까또나주"는 마이즈루 공원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성내길, 마이즈루 공원선(線)의 북쪽 출구 바로 맞은편 메이지 거리에 위치해있다. 나는 마이즈루 공원 남쪽의 유명한 카페들을 구경할 요량으로 공원을 빙 둘러 걸어갔지만, 린데 까또나주만을 방문할 목적이라면 공항선을 타고 오호리 공원 역에서 내리면 금방이다. 빌딩 입구가 작고 필기체로 흘려 쓴 간판의 가시성이 낮기 때문에 미리 구글 스트리트 뷰 등을 이용해 대략 전경을 봐 두는 것이 찾아가기 편할 테다.


린데 까또나주 내부(18th Jan. 2019)


이 문구점의 명칭은 고유명사+일반명사의 형태를 띠는데, 점주의 사용법을 볼 때 문구점만 부르는 호칭은 린데(Linde)인 듯하다. 린데의 의미를 여기저기 찾아봤으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다. 뒤에 붙은 까또나주 혹은 카르토나쥬(cartonnage)는 프랑스어로 판지 공예 혹은 종이 상자를 의미하는 단어라 한다. 그래서 합쳐서 린데 까또나주. 종종 하이픈을 넣어 Linde-Cartonnage로 쓰고 있다. 좋아하는 단어도 좋아하는 행위도 포기하지 못한 점장의 고집 아니었을까.


린데 까또나주의 차별화된 특징이라면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여러 문구류가 진열되어있기는 하나 편지 쓰기에 직접 연관된 문구를 중심으로 판매한다. 편지지, 편지봉투, 엽서, 펜, 잉크, 봉투칼이 주요 판매 대상이다. 둘째, 일본 현지 생산된 상품도 있으나 대다수가 유럽에서 수입된 문구류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주로 서유럽의 제품이 눈에 띄었다. 셋째, 캘리그래피, 잉크와 노트 만들기 등 체험 행사로 고객의 내점을 유도한다. 문구를 단순히 구입하는 것을 넘어 사용 자체에 관심을 두는 문구점이다. 마지막으로 문구류의 디자인을 중시하는 한편으로 특히 편지지나 엽서 등 종이의 원자재와 품질에 대한 관심이 크다. 홈페이지의 자기소개란도 그렇거니와, 직접 찾아갔을 때에도 제품의 메이커나 디자인보다는 재료가 얼마나 좋고 또 자연 친화적인지에 대한 설명을 길게 들었다. 영어와 일어를 섞어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점장의 얼굴이 인상 깊었다.


진정 가치로운 커뮤니케이션은 오프라인에서 종이를 통해 이뤄진다는 린데 까또나주의 일관된 고집은 물론 낡았지만 그래서 방문객에게 신뢰를 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문양보다는 편지를 쓰는 행위 자체를 중시하고, 다만 그 목적을 위해 도구를 판매한다는 린데의 태도 역시 오래된 철학 사조들을 상기시키는 안정감이 있다. 여기는 모양새의 레트로보다는 생활 방식의 레트로를 고집하는 곳이고, 진열된 상품들 역시 화려함보다는 차분함과 단정한 미감이 두드러진다.


종이보다는 천의 질감에 가까운 엽서, 봉투, 편지지(16th Jan. 2021)


이곳의 물품 대부분은 도쿄의 유명 문구점들을 뒤지면 발견할 수 있을뿐더러 같은 시리즈의 다른 넘버 제품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수도인 도쿄를 위시로 한 사회경제적 위계가 존재하고, 도쿄 바깥의 문구점들은 지역 경제규모의 한계로 인해 도쿄만큼의 품목을 구비해두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금은 인터넷 쇼핑의 시대 아니겠는가. 린데 까또나주를 찾아가면서는 취향에 맞는 문구 여러 종을 살펴보고 그중에 하나를 고르겠다거나 특정한 목표를 구하겠다는 다짐보다는 말 그대로 문득 떠오른 사람에게 편지를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슬며시 들렀다 가는 편이 어울린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가볍게 쇼핑할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니므로 지출이 꽤 생길 수 있음은 각오하고.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문구점이다. 특히 홀로 집을 떠나 쓸쓸함을 벗 삼아 이국의 도심을 오래오래 걷고 있을 도보 여행객에게는. 린데 까또나주의 인테리어는, 그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 성의 정경은 어딘가 당연히 하나쯤 있어야 할 상상 속 문구점이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다. 과잉된 감정이나 치기 없이 부단히 다듬어진 우아함. 무의미한 인간관계 속, 형식미나 취향을 넘어 애정 자체를 전하고자 하는 간절함들 사이에서 린데는 생명력을 얻고 있다.



린데 까또나주(Linde Cartonnage)

휴일 제외 11:00~20:00

수요일 휴무 (홈페이지 참고)

홈페이지 : http://linde-cartonnage.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linde.cartonnage

위치 : 1-chōme-8-11 Ōtemon, Chuo Ward, Fukuoka, 810-007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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